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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Why] 다섯개의 삼각형, 모던한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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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근대탐험]

1937년 일제시대 때 제작된 금강산 관광 팸플릿

으레 상상했던 일만이천봉 대신에 날카로운 다섯개의 삼각형이 그려져있는데…

김시덕의 '문헌학자의 근대 탐험'을 시작합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김시덕 교수는 문학과 역사를 두루 전공한 문헌학자. 20세기 초반 근대 도시와 명승지의 관광 팸플릿 등 당시의 대중에게는 친숙했지만, 지금은 희귀해진 자료와 함께 근대를 여행합니다. 첫회는 금강산.

조선일보

‘금강산 일만이천봉’ 하면 떠오르는 토속적 이미지는 금강산을 묘사하는 일종의 ‘클리셰’였다. 금강산은 추상화된 삼각형 다섯 개로 묘사될 수도 있다. 민족의 영산(靈山)은 한편으론 근대적 미감의 원천이다. /김시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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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금강산 관광 팸플릿이 있다. 앞표지에는 조선금강산이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금강산의 입체 조감도가 다섯 면에 걸쳐 실려 있다. 지금으로부터 81년 전인 1937년 제작되었다.

1937년 7월 7일에는 노구교 사건이 일어나면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4년 뒤인 1941년 12월 9일에는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고, 또 다시 4년 뒤인 1945년에는 일본이 항복했다.이처럼 1937년은 넓은 의미의 '대일본제국' 내에서 그나마 평화롭게 관광할 수 있던 마지막 해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미 일본은 만주국 문제를 둘러싸고 1933년에 국제연맹을 탈퇴하는 등 전쟁의 조짐이 나타나기는 했다. 하지만 세계대전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이 팸플릿은 이처럼 1930년대를 풍미하던 긴장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일본제국' 안에서도 손꼽히는 명승지였던 금강산을 홍보하던 것이다.

팸플릿을 펼치면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조감도 화가 요시다 하쓰사부로(吉田初三郞, 1884~ 1955)의 금강산 조감도를 모델 삼았을 터인 대형 조감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쓰사부로는 넓은 지역을 한 장의 그림 속에 압축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중심이 되는 지역을 치밀하게 드러내는 화법으로 이름 높았다. 이 지도에서도 서쪽으로는 시모노세키부터 동쪽으로는 원산역까지 넓은 지역을 묘사하면서, 내·외·해·신금강과 비로봉 같은 금강산의 주요 관광지를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팸플릿을 일본의 야후 재팬 옥션 사이트에서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내 눈길을 끈 건 팸플릿의 앞표지에 실린 금강산 이미지였다. 과문한지라, 이렇게 모던한 느낌의 금강산 그림은 처음 봤다. 이제까지 내가 주로 접해온 금강산의 이미지라고 하면 정선의 금강산 그림, 가을 단풍 진 산봉우리 위로 구름 바다가 펼쳐진 울긋불긋한 색상의 사진, 그리고 각종 정치적 선전 문구가 새겨진 북한 측의 금강산 사진이었다.

조선일보

1937년 ‘대일본제국’의 명승지였던 금강산을 홍보하는 팸플릿. 모던한 삼각형이 그려진 표지를 넘기면 상단엔 금강산의 세부 지명이 적혀 있고 하단엔 입체조감도가 그려져 있다. /김시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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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팸플릿에 실린 요시다 하쓰사부로풍의 금강산 조감도 또한 이런 유의 금강산 이미지와 상통한다. 그러나 이 팸플릿 앞면의 금강산 그림은, 이 모든 금강산의 이미지와 구분되는 독특한 느낌을 나에게 준다. 금강산이 이렇게 모던하게 그려질 수도 있었다는 놀라움이다.

금강산이라고 하면 정선이 그러했듯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어떻게 생생히 드러낼 것인가에 화가들의 주안점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 팸플릿 앞표지의 금강산을 그린 디자이너는 과감히 정반대 전략을 취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딱 다섯 개의 날카로운 삼각형으로 추상화한 것이다.나는 여기서 "일본인 디자이너가 한민족의 영산(靈山)인 금강산의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라든지, "역시 일제 시대에 그려진 금강산 그림이 멋있다"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금강산은 한민족의 '토속적'인 이미지만으로서가 아니라 모던한 이미지로서도 그려질 수 있고, 한민족의 상징으로서뿐 아니라 인류의 근대적 미감을 드러내는 산으로서도 표현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근대라는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한반도에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토속적'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팸플릿 앞면의 그림이 어떤 한국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일 터이다.

이 팸플릿에서는 "기차가 뚫린 오늘날에는 금강산 관광이 매우 편리해져서, 경성에서 당일이나 1, 2박의 단기간 여행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과 북한이 정상국가로서 안정적 관계를 수립하여, 서울에서 금강산 당일 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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