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6 (일)

"나토 진짜 깨질수도"… 트럼프 강공에 긴장하는 유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내일부터 브뤼셀 나토 정상회담

조선일보

"나토에 '이제 비용을 내라'고 말하겠다. 미국이 온갖 일에 돈 대주는 얼간이(schmucks)인가." (트럼프, 5일 미 몬태나주 유세)

세계 최대 안보 동맹 블록이자 서방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결사체였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70년 만에 와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11~12일 벨기에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사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하며 유럽 주둔 미군 철수, 미국의 나토 탈퇴 카드까지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은 트럼프로부터 "현 나토 운영 방식에 미국인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협박성 서한을 받은 뒤 방위비 증액을 약속하고, 러시아의 위협을 환기시키는 등 '나토 구하기'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美, '2%' 약속 못 지킨 유럽에 분통

그간 세계 질서를 흔드는 트럼프에게 비판적이었던 미·유럽의 언론과 학계에서도 이번 그의 분노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다.

미국은 자체 국방비가 현재 나토 방위비의 3분의 2(6860억달러·766조원)를 차지할 만큼 부담이 가중된 반면, 유럽은 군비 부담을 줄이는 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은 8일 "미국의 유럽에 대한 피로감은 정상적이다. 유럽이 미국의 안보 우산을 당연시해왔다" "설사 트럼프 임기가 끝나더라도 이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EU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

나토 군비 불균형 문제를 제기한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각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최소 2%는 군비로 내자'는 제안을 해 나토 가이드라인이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로 학살이 벌어지는데도 나토가 전비 부담을 이유로 개입을 반대하자 불만을 터뜨렸다. '2%' 룰을 지킨 나라는 지난해 미국을 제외하고 그리스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된 에스토니아·루마니아·폴란드 5국뿐이다. 부국(富國) 독일조차 군비 비중이 1.24%에 불과하며, "2024년에 1.5%까지 늘려보겠다"는 약속밖에 못 하고 있다.

이 군비 불균형의 원인은 대서양 양측의 구조적 차이에 있다. 미국은 구소련 붕괴 후 1990년대 군비를 줄였다가,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다시 대폭 늘렸다. 지금도 대테러전과 중국의 군사 굴기, 사이버전 확대에 맞서 군비를 늘리고 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대규모 전쟁 위험이 줄어들자 지난 20~30년간 복지 확대에 전념했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유럽의 평화 상태 속에서 EU 통합으로 인한 재정 부담,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 분위기가 공동 방위 의무를 경시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독일에선 나치 시대와 같은 군사 대국화를 꺼리는 여론에 따라 국방 예산을 억제해, 병사들이 총 대신 빗자루를 들고 훈련할 정도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효용 의문에도… 나토 와해 시 후폭풍 커

나토는 1949년 창설 당시 '소련을 물리치고, 미국을 (유럽 안보에) 끌어들이며 독일(재군사화)을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제 냉전은 종식됐고 과거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나토에 대거 들어왔으며, 유럽 어느 나라가 현 체제를 깨고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 외교지 내셔널인터레스트는 "21세기 들어 서방은 알카에다와 IS 등 테러리즘, 푸틴 치하 러시아의 각국 선거 개입, 대량 난민 유입 사태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임무를 조정했지만, 이 역시 과거 냉전만큼의 위협은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6일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침략 의도가 없다, 나토도 더 존속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를 와해시키는 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사설에서 "나토는 미국이 이끄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정수로 아시아 안보에도 직결된다"라며 "나토가 회비 좀 덜 냈다고 쫓아낼 수 있는 '트럼프의 골프 클럽'은 아니다"고 했다.

외교지 포린폴리시는 "러시아·중국의 야욕은 커지는데 미국과 유럽 각국이 각자도생에 나설 경우 세계적 안보 불안과 군비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했다.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유럽에 주둔하던 소련군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캐나다와 서유럽 12개국이 1949년 발족시킨 집단 방위 기구로 미국의 대유럽 안보 우산으로 인식돼 왔다. 소련 붕괴 후 동유럽 국가의 가입으로 회원은 29개국으로 늘었으며, 세계 군비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안보 협력체다. '회원국 일방에 대한 공격을 전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상호 방어 정신에 근거, 각국 국방비가 곧 나토 분담금으로 추계된다.

[정시행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