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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대기업들 "미래 투자요? 경영권 방어 지분 계산하다 날샐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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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공정위 등으로부터 순환출자 해소 압력을 강하게 받고, 지난 3월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하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다. 정부 눈높이를 맞춰야 했던 현대차가 외국 자본을 달래기 위해 꺼낸 카드가 지난 4월 '자사주 1조원 소각'이었다. 1조원은 지난해 현대차 연구개발(R&D) 비용(2조4000억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금액. 10대 그룹 관계자는 "현대차는 정부 요구대로 지배구조를 바꾸려다 외국 자본의 먹잇감이 됐다"며 "경영권을 방어하려다 기회비용만 날리는 장면을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업 경영권 방어하느라 날 샐 판"

한 대기업의 전략 담당 임원은 "요즘 주요 기업 재무팀 중엔 신사업 투자보다 계열사 간 지분율 계산에 더 신경 쓰는 곳이 많다"고 했다. 정부가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의결권 제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을 잇따라 내놓자, 대응책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주총에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여당의 상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임원은 "치열한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고민해도 될까 말까인데 서로 대립만 하다가 투자나 일자리 창출 등 정작 절실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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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업 압박 강도는 갈수록 세진다. 지주회사 관련 규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기업은 정부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20대 그룹 설문에서 기업들은 경영권 위협 요인으로 '상법 개정안'(9곳)과 '헤지펀드의 공격'(7곳),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4곳)을 꼽았다.

설상가상으로 헤지펀드의 주 무대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에서 경영 개입 사례는 2011년의 10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평균인 2배를 훨씬 웃돈다. 국내 기업은 특히 헤지펀드 공격에 취약하다. 삼성전자·현대차·SK하이닉스 등 4대 그룹 상장사 55개 가운데 19개(35%)는 대주주 지분보다 외국인 지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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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우리 기업들은 외국인 입맛에 맞춰 경영권을 인정받기 위해 배당을 너무 급격히 높이고 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국내 10대 그룹 상장사에서 받은 배당금이 처음 7조원을 넘었다. 삼성전자만 3조5000억원이나 됐다. 국내 기업들은 배당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늘려야 하는 측면은 있지만,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투자 여력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배구조 개편에 매몰된 정부·대기업

기업들은 "신사업 투자와 고용 등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정부가 지분까지 사고팔도록 만드는 규제는 최소한으로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규제와 달리 기업의 지배구조를 뒤흔들어 비생산적인 경영권 방어에 돈을 쏟아붓도록 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차등의결권(일부 주식에 일반주보다 많은 의결권 부여)' 등 경영권 방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 글로벌 기업 창업주들의 1주는 10표의 의결권을 갖는다. 뉴욕증시에 상장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홍콩거래소에 상장한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 등 중국 기업 오너들도 이런 차등의결권을 갖고 있다. 미국·일본·프랑스 등은 차등의결권과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를 운영한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산업화 시대에는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오너들의 불법·탈법 상속을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며 "하지만 글로벌에서 활약하는 우리 기업에 낡은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이성훈 기자;김충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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