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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평화원정대] 장벽·검문소에 막힌 길, 잇는다 달린다 힘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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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⑨ 팔레스타인 청년의 마라톤 프로젝트

운동 불모지 팔레스타인에

마라톤 꽃피운 조지 지단

주말 모여 왕복 10㎞ 달리며

베들레헴 국제마라톤대회로 키워

42㎞ 안 나와 왕복 두번

장벽 끼고 달리며 ‘이동 난관’ 체험

대회 수익 나자 자치정부가 가져가

“12년 동안 같은 사람들이 통치

우리 프로젝트 망쳐놨습니다”

지단, 청년대표 없는 현실 개탄

그러나 달린다, 좌절 금지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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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지단(28)이 팔레스타인을 위해 선택한 것은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이동의 한 방법이다. 지난 8일, 그를 만나러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평화원정대는 팔레스타인에서 이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날은 마침 무슬림에게 중요한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이었고,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가서 기도하기 위해 쏟아져 나왔다. 약속한 인터뷰 시간은 오후 4시 반. 라말라에서 3시간 전에 출발했는데, 약속 장소에는 5시간 만에 도착했다. 원래는 1시간 거리다. 해가 지고 있었다. 지단은 “이해한다. 여기는 팔레스타인 아닌가”라며 악수를 했다.

지단은 ‘라이트 투 무브먼트'(이동할 권리) 단체가 처음 훈련을 시작한 곳으로 평화원정대를 이끌었다. 도로에서 빠져나와 골짜기 밑으로 한참 내려간 곳이었다. “2012년부터 여기에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시(C)구역(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돌려주지 않은 곳)으로, 팔레스타인인은 오기가 쉽지 않아요.”

라이트 투 무브먼트는 지단과 덴마크 여성 2명이 만들었다. 여럿이 모여 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운동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요. 마라토너였던 덴마크 여성이 아이디어를 냈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사람들을 모아 여기서 달리기를 가르쳤어요.” 사람들은 토요일 아침마다 모여 왕복 10㎞를 달렸다. 처음에 7명으로 시작해 100여명까지 늘었다. 훈련이 끝난 뒤엔 싸가져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우리말의 식구(食口)처럼 공동체를 이뤄갔다.

탄력이 붙은 달리기는 이내 마라톤으로 ‘도약’했다. 라이트 투 무브먼트는 2013년 베들레헴에서 국제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600여명이 참가했고, 34%는 여성이었다. 이 대회의 특징은 같은 코스를 두번 왕복하는 것이었다.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베들레헴에선 마라톤 코스가 10㎞밖에 나오지 않았다. 두번 왕복하는 방법으로 마라톤 거리인 42.195㎞를 만들었다. 지단은 “마라톤 코스가 분리장벽과 체크포인트, 난민캠프와 이스라엘 정착촌을 지난다”며 “외국인 참가자들은 직접 뛰면서 팔레스타인 안에서 이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팔레스타인 전역은 850km 길이의 분리장벽(이중 서안지구는 714km)으로 둘러싸여 있고, 체크포인트(검문소)도 300곳이나 설치돼 있다. 원정대가 지단을 만나러 가는 길에 5시간이 걸린 것도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인 칼란디야 체크포인트의 차량 통행을 이스라엘군이 막았기 때문이다. 이날은 걷는 사람에게만 통행을 허가했고, 빠져나가지 못하는 차들은 뒤엉켜 움직이지 못했다. 장벽은 가족 사이를 끊어놓고, 집과 직장을 멀어지게 했다.

장벽을 옆에 끼고 달리는 마라톤은 팔레스타인에서 곧 관심을 끌게 됐다. 시작한 지 4년 만인 2016년에는 4600여명이 대회에 참가했고, 이 가운데 1180명이 외국인이었다고 지단은 설명했다. 대회 수익은 6000유로(약 760만원)에 달했다.

달리기 모임도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베들레헴을 포함해 예루살렘, 하이파, 가자 등 모두 9곳에 모임이 구성됐다. 마라톤대회 수익금과 티셔츠 판매 등으로 돈을 모아 국외 마라톤대회에도 선수를 15번이나 파견했다. 지단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런던, 레바논 대회 등에 갔고, 아직 한국은 못 갔다.(웃음) 한번에 10명씩 팀을 짰다. 이들은 마라톤도 하면서 그 지역 대학과 교회, 레스토랑에서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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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성공 스토리’처럼…팔레스타인도 웃는 날 왔으면”


장벽 안팎 싸움에 지친 청년들
마라톤하며 웃음 찾아
‘해피 프로젝트’로 바뀐 일상
“작은 변화로 희망 보아요”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장벽 밖으로 퍼지자 방해자가 등장했다. 엉뚱하게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 마라톤대회를 자신들이 주최할 테니 라이트 투 무브먼트는 정부 밑에서 일하라고 했다. 자치정부는 마라톤대회에 들어오는 수익에 욕심을 냈다. 지단은 정부의 관여를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의 마라톤대회는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우린 매우 당황했어요. 마라톤은 팔레스타인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프로젝트였어요. 여기에서는 주로 돈을 쓰는 프로젝트밖에 없는데 말이죠.” 그는 자신의 사례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팔레스타인 청년 사의 ‘갭’(간극)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흘 뒤인 12일 라이트 투 무브먼트가 훈련하는 ‘가톨릭 액션 스포츠 코트’를 찾았다. 여성과 남성, 국적과 연령대가 다른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마라톤대회는 2년 전 끝났지만, 이들은 아직 운동화 끈을 풀지 않았다. 몸을 푼 다음 왕복 달리기, 계단 달리기, 플랭크, 스쿼트를 쉴 새 없이 했다. 얼굴이 벌게진 참가자들을 지단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스물네살 여성 아마니 아부 아와드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성이 밖에서 운동하는 게 어렵다. 처음엔 체크포인트 앞에서 뛰는 것도 두려웠는데, 여기서 함께하다 보니 이젠 혼자서도 뛰어다닌다”고 말했다. 이들의 운동은 숨이 턱까지 차오른 뒤에야 1시간 만에 끝났다. 9개월째 운동에 참여한 독일인 말비나 자네츠코(19)는 “이 운동은 성공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 스토리가 좌절에 빠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용기를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운동을 마친 지단을 붙잡고 팔레스타인 청년과 정부 사이의 ‘갭’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팔레스타인은 12년 동안 선거를 하지도 않았고, 계속 같은 사람들이 정부와 의회를 맡고 있어요. 거리에 나가보면 절반 이상이 청년인데, 의회에는 우리의 대표자도 없고 우리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정부는 좋지 않은 결정을 많이 했고 책임도 지지 않아요. 우리 프로젝트도 이렇게 망쳐놓지 않았습니까.” 지단은 “청년들은 기존 리더십에 저항하고 싶지만 무서워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벽 밖과 싸우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장벽 안에서도 지쳐 있었다.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13년째 집권 중이다. 아바스 대통령은 선거 없이 임기만 늘려가고 있다. 부패 의혹에도 연루돼 있다. 건너편 가자지구의 경우 청년실업률이 60%를 넘어선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지단은 “해피(행복) 프로젝트가 필요했다”며 “팔레스타인은 테러나 분쟁 등 나쁜 이미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문화적으로 청년과 여성들에게 힘을 주는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사나운 총과 거대한 장벽 앞에서 이런 운동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물었다. “나 혼자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이것은 작은 변화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웃게 하고, 마라톤을 하고, 국제사회가 우리 스토리를 보게 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바뀌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낼 수 있다는 일상의 희망을 갖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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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배가 고프다”였다. 그는 기독교도지만 라마단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해 금식을 했다. 금식하면서, 동료들과 운동도 1시간 하고, ‘저항’에 대한 인터뷰도 한 뒤 밥을 먹으러 갔다. 지단은 배가 많이 고파 보였다.

베들레헴/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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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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