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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도재기의 천년향기](11) 1400년 유구한 맛과 향의 전통 차, 아메리카노 대신할 날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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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차 문화 (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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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전통 차 문화(상)’ 편에서 보았듯 우리 차 문화는 140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부침 속에서도 시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진화’하며 긴 세월 이어져 지금에 이른다. 차 문화의 핵심인 차를 만드는 ‘제다’(製茶)도 2016년 7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됐다. 제다가 한국 전통문화의 하나로 대표성을 지니며,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존·전승을 지원할 만큼 가치와 의미가 크다는 의미다.

■무형문화재이긴 하지만…

문화재청은 무형의 문화유산으로서 제다를 ‘차나무의 싹이나 잎·어린줄기 등을 이용해 차를 만드는 기법으로, 찌거나 덖거나 발효 등을 거친 재료를 비비기·찧기·압착·건조 등의 공정을 통해 마실 수 있는 차로 만드는 일련의 전통기술’로 정의했다. 흔히 수제 덖음차로 부르는 전통적 제다다.

문화유산으로서의 제다는 역사성, 예술성, 고유성 등을 지녔다. 삼국~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단편적이긴 하지만 관련 기록이 있어 역사적 근거와 그 지속성을 보여준다. 차의 맛과 향·색이나 형태, 표현미 등에서도 중국·일본과 다른 특징이 있다. 여기에 제다법도 다양하고, 특정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져 지역성도 두드러진다. 무형문화재로서의 여러 조건을 갖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선 우리보다 앞서 문화유산으로 관리 중이다.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제다의 보존·전승, 문화적·산업적 측면에서 전통 차 문화의 활성화 기대도 높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커피나 각종 차 음료의 공세로 생존이 쉽지 않다. 제다 전승자인 개인, 단체는 막강한 자본력과 당최 경쟁이 되질 않는다. 마니아를 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즐길 수 있도록 할 특화된 차별성이 요구된다.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품질, 전통 차를 즐기는 문화의 확산 등이다. 그런데 차계 안팎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1400여년의 차 문화를 관통하며 대변하는 공식 제다법이 안타깝게도 아직 없다. ‘아리랑’처럼 ‘제다’라는 종목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 뿐 특정 보유자, 보유단체는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소명의식을 갖고 평생 온몸을 바쳐 차를 만들어온 제다인들이 있지만 저마다 제다법이 다른 실정이다. 자긍심을 가진 제다인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이 전통의 맥을 이었으며, 옳다고 강조한다. 이는 삼국시대 이래 전통적 제다법을 온전하고 명확히 보여주는 문헌기록이 없어서다. 남아 있는 문헌은 꽤 되지만 대부분 단편적이다보니 똑같은 문구를 놓고도 해석이 다르다. 이른바 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린다는 ‘구증구포’(九蒸九曝)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물론 다양한 제다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유구한 역사의 진화물이어서다. 다만 이 같은 차계의 혼란이 전통 차 문화 활성화의 한 걸림돌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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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무형문화재 지정된 ‘제다’

삼국시대 이후 온전한 기록 없어

단편적 문헌 놓고 해석 제각각

공식 제다법은 존재하지 않아

‘구증구포’ 대표적 논란거리

그럼에도 제다인들 묵묵히 노력

“맑고 구수, 뒤끝 정갈한 우리 차

중국·일본 것보다 훨씬 빼어나”

맛·향 좌우 ‘다구’ 중요성도 강조

차 문화 활성화 저해 요인엔

형식 강조 다례문화도 한몫

차의 가치, 수행·성찰·소통…

현대적 계승 방향 모색해야


차계의 혼란은 전통 차 문화에 대한 종합적·체계적인 조사, 이를 바탕으로 한 비교나 연구분석의 중요성, 시급함을 잘 드러낸다. 사실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전통 차의 맥을 찾는 제대로 된 조사나 연구 작업은 이뤄지지 못했다. 지금도 일제강점기 조사자료가 연구로 활용될 정도다. 뜻있는 제다인들이 최근 개인적으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지나친 형식이 강조되는 다례문화도 전통 차 문화 활성화에 관심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마시는 이의 오감까지도 격식으로 규제하고 따지는 듯한 일부 다례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다례 형식을 놓고 서로 다투는 모습도 보인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진정한 의미, 전통 차 문화에 담긴 내용보다 형식에 매달리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교육의 하나로 이뤄진 다도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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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인이 말하는 전통 차 문화

전통 차 문화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도 불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명의식과 장인정신·자긍심으로 차를 만드는 제다인들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 차밭을 관리하며 차를 만들고 차 문화 활성화 노력과 더불어 이론적 연구도 한다.

실제 제다 과정과 전통 차 문화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자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65)을 차밭에서 만났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는 ‘초의선사로부터 이어져온 제다법과 차의 품격을 보존시키고, 시대에 맞게 계승·발전시켜 한국 차 문화 융성에 이바지함’을 취지로 한다. 이론적 연구와 함께 제다인 육성, 관련 강좌 등도 마련하고 있다. 박 소장은 초의 스님의 다풍을 이은 응송 스님(전 대흥사 주지)으로부터 제다법 등을 전수받은 한학자다. 그는 전남 순천과 화순을 끼고 있는 모후산 자락의 야생차밭에서 39년째 차를 만든다. 그의 ‘동춘차’(東春茶)는 양이 많지 않아 연구소 후원자 등에게 나눠주는 비매품이지만, 차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선 잘 알려져 있다.

박 소장과 연구소 연구원들은 올봄에도 차를 만들었다. 특히 이번에는 동춘차와 함께 고려시대에 즐긴 둥근 떡모양의 단차도 시도했다. 옛 문헌을 참고해 차 문화의 절정기인 고려시대 최고 수준의 차를 재현해 보고자 한 것이다. 더 나은 차를 위한 연구의 하나다.

고려 단차의 제다는 막 올라온 차나무의 새순(‘1기’라 불린다)만으로 시작했다. 워낙 작고 여려 채취 자체도 쉽지 않다. 따온 새순에서 티 같은 불순물을 꼼꼼히 골라내고 시루에 찐다. 불을 피우는 나무는 대나무다. 찐 찻잎은 왕골자리 위에서 식힌 뒤 삼베에 싸 무거운 돌 3~4개로 눌러 놓는다. 찻잎이 지닌 독성 등을 줄이는 일의 하나다. 3~4시간 뒤 뭉쳐진 찻잎을 돌절구에서 찧는다. 잎의 형태가 없어진다. 자체 수분으로 눅눅한 찻잎 덩이를 다시 약연 같은 청자로 만든 기구(다연)에서 곱게 갈아낸다. 찻잎들은 이제 가루가 됐다. 그 가루를 소나무로 특별제작한 틀에 넣어 작고 동그란 형태를 만든다. 요즘의 ‘동그랑땡’ 같은 모양이다. 이를 무쇠솥에 한지를 깔고 놓은 뒤 약한 불로 건조시키고 이어 뜨거운 온돌방으로 옮겨 숙성과정을 거친다.

이제 초록색이 사라진 단차를 약한 숯불이 담긴 화로 위에서 굽는다. 이어 뽕나무로 만든 절구에 곱게 빻는다. 더 미세한 분말로 만들기 위해 다시 무쇠 다연에서 간다. “후” 불면 날아갈 정도로 극히 미세한 가루가 됐다. 이를 비단 천에 싼 뒤 물에 우려낸다. 한 잔의 차가 비로소 만들어졌다. 동춘차보다도 더 복잡한 20여개 과정을 거쳐서다. 박 소장은 “지금까지 차를 만든 경험과 이론적 연구를 적용한 단차 재현과정을 통해 또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사실 차 한 잔에 담긴 수제차 제다인들의 수고로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찻잎을 딸 때부터 온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듯하다. 그야말로 수도자의 태도다.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워낙 민감해 모두들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지요. 제다법은 각자 다르지만 자긍심도 있고. 저는 차의 맛, 향, 색도 중요하지만 차가 지니는 기운을 귀하게 여깁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마셨을 때 온몸에 생기가 돌고 살아나는 듯한 기운을 가진 차가 좋은 차입니다. 그렇게 배웠고, 저만의 방식으로 제다하고 또 우려내는 탕법도 지킵니다.”

박 소장은 “중국, 일본 등의 차도 많이 마셔보지만 맑고 경쾌하면서도 구수하고 뒤끝이 정갈한 우리 차를 따라오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산업적 측면에서도 한국 차의 경쟁력을 높게 봤다. 제다법 혼란과 관련, “제가 배우고 연구한 시각에서 보면 솔직히 일부 제다법·탕법에는 문제가 있어요. 저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만 않는다면 개선될 것이라 믿어요. 좋은 차는 다르거든요. 취향에 따른 여러 차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이왕이면 보다 좋은 차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합니다.”

그는 전국의 차 문화 관련 자료와 제다 전승실태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조사·연구 필요성도 강조했다. “몇년이 걸리듯 현장 전수조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비교·연구를 통해 전통 차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연구가 더 심화될 수 있고, 무형문화재로서의 보존·전승에도 이바지하며, 나아가 국제적으로 한국 전통 차 문화의 면모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견해다.

또 현대 차 문화의 중심이 ‘다례’가 아니라 ‘차’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격식을 중시하는 다례보다 더 좋은 차와 더 온전한 맛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죠. 차를 매개로 한 삶의 여유, 성찰 같은 가치도 만들어내고….” 그는 “다구에 따라 차 맛과 향 등이 많이 달라진다”며 “많은 다인들이 차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다구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도 했다. 다구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다구 전문가인 도예가 이명균씨와 8년째 다구를 함께 연구·개발해오고 있어요. 그동안 구워낸 찻잔에 차를 마셔보고 더 나은 맛을 위해 부수고 다시 굽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명균 도예가는 경기도 이천에서 ‘하빈요’를 운영 중이다. 특히 까다로운 청자 다구 전문가로 이 도예가의 하빈요는 요즘 보기 드문 장작가마다. 박 소장은 “한국 전통 차 문화의 빼어난 수준을 이 작가와 함께 확보해 해외에도 널리 자랑하고 싶다”며 웃었다.

전통적 수제 덖음차도 취향에 따른 기호음료의 하나다. 다만 다른 마실 거리와 달리 수양과 수행, 성찰, 교류와 소통 등의 갖가지 의미와 가치가 역사적으로 부여되면서 이어져온 전통문화다. 올해 만든 햇차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지금, 그 전통문화의 가치와 의미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진지하게 모색할 때다.

<글·사진 |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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