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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월드컵 덕분에 '대~한민국' 속 시원히 외쳐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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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2차전 열릴 러시아 로스토프, 고려인들 모여 한국어 응원 연습 강제 이주 한인 후손 7만명 거주

"죽기 전에 '대~한민국'을 속 시원하게 한번 외쳐보고 싶었어요. 월드컵 덕분에 소원이 이뤄질 줄 꿈에도 몰랐어요."

고려인 김바브리나(72)씨는 요즘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이 생겼다. '대한민국'을 한국어로 수십 번씩 발음해보는 것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Rostov on Don·이하 로스토프)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고려인 이웃들이 모두 저희 집에 와서 '꼬리아(한국)'를 외치며 응원 연습을 하고 있어요." 한국말이 서툴러 주로 러시아어를 쓰는 김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로스토프 바타이스크 고려인협회장인 남편 김레브(72)씨도 아내를 바라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눈감는 순간까지 한국을 그리워하셨다"며 "아버지 몫까지 한국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20일 러시아 로스토프에서 만난 고려인 김바브리나(왼쪽에서 둘째)·김레브(셋째)씨 부부와 가족들이 태극기를 들고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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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부부가 사는 로스토프에서 러시아월드컵 한국 대표팀이 23일 밤 12시(한국 시각) 멕시코와 2차전을 치른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1000㎞ 떨어진 로스토프에는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김씨처럼 고려인(高麗人)으로 불린다. 로스토프와 주변 지역에 7만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1937년 9월 연해주에서 화물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 이주된 17만 한인(韓人)들의 후손이다. 당시 일본과의 전쟁을 앞둔 소련의 스탈린이 일본 편을 들거나 첩자로 활동할 것을 두려워해 한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김바브리나씨 부모도 그렇게 우즈베키스탄행 열차에 타게 된 한인이었다.

김씨 부부는 1960년대 초 로스토프에서 만나 결혼했다. 러시아인 땅을 빌려 양파, 감자 등 돈 되는 작물이라면 악착같이 키웠다. 로스토프 바타이스크 마을에 집을 샀고, 자식들 대학 학비까지 마련했다. 지금은 손자·손녀까지 3대(代)가 한 지붕 아래 산다.

이들은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김씨의 둘째 딸은 한국 안산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향하는 고려인 3세대가 늘고 있다. 기자가 바타이스크 마을에 도착하니 "고국에서 손님이 왔다"며 밥상이 차려졌다. 김치부터 갈비탕, 오이소박이 등 한국 음식과 맛이 다를 바 없었다.

"2010년 한국 도움으로 로스토프에 영농센터가 세워진 덕에 농사지을 때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한국 국민에게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요."

이들은 멕시코전을 응원할 생각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입장권은 구하지 못했지만, 길거리에서 흔들 태극기도 준비했다. 아이돌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손녀 김아냐(11)양은 "고려인은 한국과 핏줄로 연결돼 있는 한 민족이라고 할아버지께 배웠어요. 대표팀 '삼촌'들이 힘낼 수 있도록 목청껏 응원할래요"라고 했다.

[로스토프(러시아)=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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