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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퍼나르는 몰카, 피해자엔 살인 동영상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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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가'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

전 애인 유포영상 삭제 상담 급증… 최근 피팅모델 사진 유출도 늘어

성인사이트 차단해도 이미 퍼져

조선일보

"가끔 '야동 보며 일하니 좋지 않으냐'는 사람이 있습니다. 피해자 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죠. 저에겐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 동영상'입니다. 보는 것도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지난 2014년부터 '디지털 장의사'(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가)'로 활동하며 불법 촬영물 피해 여성 수백 명을 도운 '이지컴즈' 박형진〈사진〉 대표는 22일 "피해 여성은 자살 직전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연락해온다"며 "삭제에 앞서 이들이 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죽으면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본다'고 설득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취업·결혼을 앞두고 과거 흔적을 지우려는 사람들을 위해 사업을 시작했는데, 갈수록 '전 남친이 유포한 성관계 동영상을 지워 달라'는 요청이 많아져 요즘은 직원 30여 명과 밤낮없이 불법 촬영물 삭제만 하고 있다"며 "작년부터 상담 요청이 급증해 요즘 하루 10건 정도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3년 전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 유출된 유튜버 양예원씨가 본인 사연을 공개한 후 인터넷 사진·동영상 유출 문제에 대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유모씨와 이모씨 등도 양씨와 같은 방법으로 당했다고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사진 유출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18만명이 서명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촬영 사진이나 동영상이 유출되는 디지털 범죄에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여성들의 불안감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양씨 같은 피해 사례가 많나.

"거의 없었는데 올해 3월부터 피팅 모델 알바를 했던 여성들이 '사진이 유출됐다'며 우후죽순 상담을 해왔다. 최근엔 10대 남학생이 누드 사진에 아는 여학생 얼굴을 합성한 '지인 능욕' 사진을 지워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중국 피싱 조직에 '몸캠' 사진을 보냈다가 이를 유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연락하는 학생들도 있다. 의뢰를 받다 보면 어떤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가 새로 생기는지 알 수 있다. 갈수록 수법은 다양해지고 피해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피해 여성의 고통은 어느 정도인가.

"전 남자 친구가 사귀면서 몇 개월간 동영상을 찍은 후 이별 후 한꺼번에 작정하고 유포한 경우도 있다. 사랑했던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 피해자들 충격이 크다. 삭제에 앞서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야 한다. '디지털 장의사' 이름을 걸고 일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사람 마음까지 돌보는 '디지털 의사'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심리 상담 자격증도 땄다."

―일할 때 고충은 무엇인가.

"몰카를 설치해놓고 잘 찍히는지 렌즈를 흘끔 쳐다보는 남자 모습을 볼 때 피가 거꾸로 솟는다. 한동안 성인 사이트에서 인기를 끌던 영상도 몇 개월 지나면 반응이 시들해진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야 기존 피해자 고통이 줄어드는 구조다. 끝도 없이 새로운 피해자가 나와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불법 촬영물은 어떻게 지우나.

"성인 사이트 운영자에게 삭제 요청을 한다. 정부나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는 공문을 보내거나 초상권 침해를 운운하는데 운영자는 눈도 끔쩍 안 한다. 운영자를 잘 달래고 부탁해야 겨우 지워준다. 법 조항을 들먹이면서 강하게 얘기하면 '2탄' '3탄' 하는 식으로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올리기도 한다."

―해외 사이트에 불법 촬영물이 유포된 경우 삭제가 어렵다는데.

"해외 사이트는 접촉 창구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우회 접속 방식으로 운영자에게 쪽지를 보낼 수 있다. 지금까진 정부가 피해자들을 수수방관했다. 경찰에 얘기하면 '삭제는 방송통신심의위에 문의하라'고 한다. 방심위에서 심의해 사이트 차단하는 데 한 달 걸린다. 이미 퍼질 대로 다 퍼진 후이다. 해당 사이트를 차단해도 다른 주소로 접속하면 검색이 되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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