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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30년째 日고승의 위령제… 그 앞엔 징용자 위패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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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스님, 日서 한인 유골 수습… 한국 돌로 위령탑 세워 넋 위로

16년 전부터 부처님 오신날마다 자비들여 한국 방문해 위령 법회

검은 승복에 황토색 가사(袈裟)를 걸친 일본 스님들이 대웅전을 가득 메웠다. 향을 사르고 부처님께 3배(拜)를 올린 이들은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를 위한 위령 법회'를 올렸다.

부처님오신날인 22일 오전 서울 광진구 기원정사(회주 설봉 스님)에선 특별한 법회가 열렸다.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市) 약왕사(藥王寺) 주지 다나카 세이겐(田中淸元·69) 스님을 비롯해 일본 유력 불교 종파인 조동종(曹洞宗) 스님 27명과 가족 등 41명의 방문단이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회에 앞서 위령 법회를 엄숙하게 올렸다. 일본 방문단이 부처님오신날 기원정사를 찾아 위령 법회를 올리는 것은 올해로 16년째다.

조선일보

부처님오신날인 22일 오전 서울 광진구 기원정사 법회에 일본 다나카 세이겐(오른쪽에서 둘째) 스님이 설봉 스님(오른쪽 끝)과 함께 참석했다. 세이겐 스님은 16년째 부처님오신날이면 기원정사를 찾아 일제 강제징용 희생 한국인을 위한 위령법회를 열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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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다나카 세이겐 스님의 아버지로 약왕사 주지를 지낸 고(故) 다나카 고우인(田中孝印) 스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나카 스님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탁발을 다니면서 무연고 유골을 수습했다. 일제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비행장, 댐, 철도 공사 등에 동원됐다가 희생된 한국인들이었지만 구체적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불가능해 우선 사찰에 모셨다. 1970년대부터 스님은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을 찾았다. '한국 돌로 만든 비석, 한국 불상, 한국 스님이라야 제대로 위로가 될 것'이란 생각에 조계사 앞 불구(佛具) 상점에서 한국 불상을 구입해 일본으로 옮겨갔고, 충청도에서 산 돌로 위령탑을 세운 게 1984년이다. 이후 매년 11월 약왕사에서 강제징용 희생 한국인을 위한 위령제를 드렸다. 한국 불교계엔 알려지지 않았고, 알리려고 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던 1980년대 말 비구니 설봉 스님이 도반(道伴)들과 함께 일본 사찰을 순례하던 중 약왕사 위령탑을 발견했다. 사연을 들은 설봉 스님은 "정말 고맙다. 우리가 앞으로 10년간 위령제를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설봉 스님은 매년 11월이면 한국에서 쌀가루, 과일, 과자 등 모든 제물(祭物)을 준비하고 직접 송편을 빚어 희생자들의 영전에 올렸다. 강제징용 희생자 위령제는 2010년 다나카 고우인 스님이 입적한 뒤에도 아들 세이겐 스님을 통해 대(代)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설봉 스님이 매년 부처님오신날 일본 스님들을 초청해 기원정사에서 위령 법회를 연다. 해마다 30여명의 일본 스님들이 항공료를 스스로 부담해가며 한국을 찾아 법회에 참여한다.

세이겐 스님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들은 홋카이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죽어 갔을 것"이라며 "40년 전 무연고 한국인의 유골을 보호하고 수습하는 일은 일본 사회에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불자(佛子)로서 민족을 차별하면 안 된다'며 챙기셨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매년 11월 위령 법회와 부처님오신날 기원정사 위령 법회는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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