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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네이버 앱을 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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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한겨레21

다섯 해 전까지 살던 집에서 차로 5분 남짓 거리에 홈플러스가 있었다. 두 딸이 갖고 놀 자석 글자를 이곳에서 두 번 샀다. 2000년대 후반이었다. 처음엔 자석나라 제품만 있다가 어느새 홈플러스 로고가 찍힌 게 나란히 진열됐다. 제조업체는 같지만 홈플러스 브랜드의 제품이 더 쌌던 것 같다. 홈플러스 제품으로 손이 갔다. 그 경험이 여태 찜찜한 기억으로 남았다. 오지랖 넓게도, 계속 피비(PB)상품을 사면 제품 고유 브랜드는 사라지고 제조사는 유통사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 피비상품은 흔한 일상이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피비상품은 한 단계 더 진화해 유통업체 로고마저 감춘 ‘노브랜드’로 브랜드화했다. 제조사와 소비자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유통사와 제조사의 권력관계 역전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세계 최대 기업에 속하는 월마트와 아마존의 지위가 이를 상징한다.

생산이 유통에 종속되는 현상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우리나라 뉴스 시장이다. 뉴스 유통사인 네이버는 디지털 뉴스 시장의 70%를 독점하고 있다. 이용자는 네이버 앱으로 꼬리표 없는 뉴스를 소비한다. 제목을 보고서 클릭하지만 누가 썼는지 모른 채 읽는다. 언론사는 ‘피비뉴스’ 공급자로 전락했다. 그나마도 공짜다.

‘헐값 콘텐츠’가 된 것은 네이버 탓만은 아니다. 언론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한 예로 1990년대 중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신문사들이 무가지를 뿌리며 거품 부수를 키우는 데 혈안이 되었다. 자전거와 비데까지 주면서 신문을 봐달라고 했으니…. 뉴스 콘텐츠는 사보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서 봐주는 것이란 인식이 형성됐다. 지금도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선 간혹 신문을 봐달라며 5만원권 지폐를 흔드는 중년 남성을 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를 출입할 때였다. 날짜는 기억에 없지만 2012년 기자단에 징계 안건이 올라왔다. 매체 몇 곳이 엠바고(보도 시점 유예)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9시부터 내보낼 수 있는 보도자료를 앞서 온라인에 띄운 것이다. 신문쟁이였던 나에겐 30초, 1분 먼저 기사를 쏴서 어쩌겠다는 건지, 굳이 그걸 징계까지 하겠다는 것은 또 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알고 보니 네이버에 조금이라도 먼저 기사를 노출해 광고 단가로 이어지는 클릭 수를 높이려 했던 것이다.

속보는 여전히 중시되는 언론의 가치다. 하지만 경쟁사들끼리의 속보 경쟁은 네이버가 디지털 공간에서 내주는 한 뼘 자리를 다투는 성격이 짙다. 빠르게 쏟아지는 뉴스는 네이버란 깔때기로 몰린다. 소비자 처지에선 동네 구멍가게나 전통시장보다 대형마트가 장보기 편하듯, 개별 매체보다 포털 사이트가 이용하기 편하다. 언론을 불신하는데도 공짜에 뉴스 접근성까지 높아지면서 소비는 크게 늘었다. 덩달아 손님이 몰리는 네이버에서 좌판을 벌이려는 언론사도 급증했다. 기사가 봇물을 이루면서 시장은 커졌지만 저품질의 기사가 태반이다. 언론사 간 차별성도 네이버에서 희석되고 있다.

아이들한테 자석 글자를 사줄 때만 하더라도 윤리적 소비를 잠시 고민했다. 대형마트 대신 동네에서 물건을 사려는 흉내라도 냈다. 하지만 시간은 대형마트 편이었다. 편리성, 쾌적함, 다양한 제품으로 무장한 대형마트에 금세 굴복했다.

나의 뉴스 소비 형태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엔 다음·구글·야후 등 여러 포털을 이용하고 주요 언론사 앱을 깔아 뉴스를 보려 애썼다. 하지만 스마트폰 구입 이후 휴대전화에 지금껏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건 네이버 앱뿐이다. 최근에는 한겨레 기사마저 네이버 앱에서 본다. 피비상품을 납품하는 회사 임직원이 대형마트에서 노브랜드나 마트 로고가 붙은 자사 제품을 사는 격이다. 이제 이 지긋한 모순과 어리석음을 끊고 싶다.

오늘 네이버 앱을 지웠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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