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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베이징 현장에서]레노버 애국주의 논란 휩싸여...미중 무역마찰 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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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사이트 바이두에서 레노버가 한때 5G 관련 국제표준 제정과정에서 화웨이를 지지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애국적이라고 비난받는게 억울한지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바이두


“삼성전자가 LG전자가 제안한 국제표준에 반대하고 미국 기업이 주도한 표준을 지지했다면 반(反) 애국적 행위일까.”

중국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중국 최대 PC업체 레노버가 2년 전 국제표준 회의에서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가 낸 5G(5세대) 관련 표준 대신에 미국 퀄컴이 주도한 표준을 일시적으로 지지한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양위안칭(楊元慶)레노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에 “애국 테스트를 참아낼 수 있지만 기술표준에 애국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국제시장에서 막힘없이 통용될 수 있을까”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양 CEO가 이글을 쓰면서 링크한 글의 제목은 ‘2년 전 5G 투표, 레노버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이다. 국제 표준단체인 3GPP가 5G 모바일 광대역 코딩 표준 선정을 위해 2016년 3차례 개최한 회의에서, 레노버가 화웨이가 이끈 폴라(Polar)안 대신에 퀄컴이 주도한 LDPC안을 한 때 지지한 게 드러났지만 결국 폴라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과적으론 폴라가 5G 모바일 정보 전송 오류를 수정하는 영역에서 관련 표준으로 채택됐다.

레노버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12일 자사 뿐 아니라 계열사인 모토로라 모바일 모두 화웨이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중국의 5G 기술 발전을 계속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레노버의 과거 행보가 반애국 행위로 비난받는 것을 두고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사이트 바이두(百度)에서는 ‘억울하다’와 ‘억울하지 않다’는 찬반 투표까지 진행중이다.

“5G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포퓰리즘으로 접근하면 단지 쇄국에 이를 뿐이다”는 주장과 “레노버가 제품을 팔때는 중국 기업임을 강조하고 애국을 얘기하면서 투표할 때는 비즈니스만을 얘기한다”는 지적이 맞서고 있다. 14일 오후 1시(현지시간)현재 참가자의 91%인 2194명이 ‘레노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2년전 같은 국제표준 회의에서 LG 등이 주도한 터보(Turbo)안이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이슈가 되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레노버가 2년전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건은 미중 무역마찰 탓이 크다. 5G 시장 선점에 발빠른 행보를 보여온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미중 무역마찰이 첨단기술 패권 경쟁 양상을 보이면서 중국에서 기술 애국주의가 달아오르면서 레노버에 불똥이 튄 것이다.

“퀄컴과 (구글의)안드로이드가 국제시장에서 막힘없이 통하는 게 미국을 애국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퀄컴은 왜 ZTE에 (칩을)팔지 않나” 라는 네티즌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기술의 영역과 국적 경계는 없지만 제재는 국가별로 가해지기 때문에 이를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표준 제정 때 중국 기술을 우선적으로 지지하는 애국주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국가표준 제정에서 내⋅외자기업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옌펑청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대변인)는 중국 당국의 공개적인 입장과 충돌한다.

물건을 파는 기업 위에 브랜드와 기술을 파는 기업이 있고, 그 위에 자신의 특허로 표준을 확보해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기업이 있다고 한다. 중국은 산업가치 사슬의 윗단인 국제표준 제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국수주의와 애국주의로 뭉친 국가의 기업들이 국제표준을 주도하는 건 국제표준 자체의 존재 이유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정치가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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