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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애들 얼굴 실컷 보고파" 택배기사 박씨의 하루 1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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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오전7시~오후11시 분류·배달·상차로 쉴틈 없어

점심은 라면·저녁은 햄버거…"그래도 공기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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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박창환씨(42)가 '까대기'를 완료한 택배 화물을 트럭에 옮겨싣고 있다. © News1 황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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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운전대 위에 올려진 손에는 여러장의 종이가 쥐어져 있다. 배송과 반품, 수거로 분류된 이 운송장들이 손아귀에서 모두 사라져야 택배기사의 하루가 마감된다. 가슴팍에 달아둔 휴대전화는 고장난 알람처럼 쉴 새 없이 울어댄다. 언제 물건이 도착하느냐는 고객, 또는 보낼 물건 찾으러 언제 오느냐는 거래처에서 오는 문자와 전화다. 오후 4시30분에 사서 옆자리에 둔 햄버거는 오후 6시가 넘어서도 뜯지 못했다. 한 달 전 떠들썩했던 다산신도시 '택배대란' 이후 관심이 높아진 택배기사의 일상을 엿보기 위해 4년차 택배기사 박창환씨(42)의 하루를 동행했다.

◇'까대기'로 여는 아침…화물 분류해 싣고 나면 어느새 점심

박씨는 오전 7시쯤 강남구 양재동 물류장에 도착했다. 양곡창고를 임대해 개조한 물류장 입구에는 어떤 간판도 달리지 않았다. '츄레라'(컨테이너 트레일러)와 택배 트럭만이 부지런히 어둠을 뚫고 들락거렸다.

낮 1시까지 약 5시간 가량을 상하차 작업으로 시간을 보냈다. 일명 '까대기'. 부두의 인부들이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고 당겨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을 뜻하는 가대기에서 유래한 이 말은 이제 바닷가를 벗어나 뭍 인부의 단어가 됐다.

새벽을 달려 각 지역 물류장에 도착한 택배물품이 '츄레라'에서 쏟아졌다.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줄지어 이동하는 화물은 형광등처럼 흰 빛을 쏟아내는 판독장치(스캐너)를 거치며 세부지역 단위로 재분류됐다.

본사는 분류를 자동화한다며 자동분류기 휠소터(Wheel Sorter)를 전국 100여곳의 분류작업장에 설치했다. 박씨가 있는 강남분류장에도 라인 2개 중 하나에 휠소터가 설치됐다. 그러나 박씨의 출근은 1분도 늦춰지지 않았다. "분류기에 통과시키는 것은 다시 사람의 일이잖아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오분류는 다시 사람의 몫이고요." 오분류가 많다며 박씨는 투덜거렸다.

이날 배정된 화물은 모두 350여개, 박씨는 1톤 트럭에 화물들을 차곡차곡 싣기 시작했다. 무거운 물건부터 아래에, 먼 지역부터 안에 쌓는 건 택배 일을 하며 몸과 머리로 터득한 노하우다. "택배가 몸으로 하는 것 같죠? 조금 있다 배송할 때 보세요. 택배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몸과 머리를 같이 잘 써야 하는 일입니다. 냉동식품 같은 것은 배송시간이나 내용물 성질도 봐야 하고, 서류뭉치같은 것은 안 구겨져야 하고…." 박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상자를 '테트리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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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박창환씨(42)가 손수레로 택배 화물을 나르고 있다. © News1 황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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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이 끝나면 기사들은 겨우 허리를 펴고 간단한 식사를 한다. 박씨는 매일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식사를 꼭 해야 해요, 간단히라도. 몸이랑 머리를 같이 쓰는 일이다 보니…. 배달 나가면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고요." 이날 아침기온은 영상 12도, 박씨의 옷은 이미 조금 축축해졌다.

택배 화물 분류작업은 오후 1시쯤 끝났다. 그러나 박씨는 "아침부터 대여섯시간하는 분류작업에 대한 비용은 따로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택배업체들은 분류작업 비용을 포함해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박씨는 "그러기엔 수수료가 낮은 편"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돈 내야 휴가 가는 택배기사…"시간도 돈이라 뒷문 안닫고 배달"

박씨의 트럭은 1시30분쯤 분류장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서울 강남구 자곡동과 세곡동을 배정받았다. 박씨가 "아, 오늘 출발도 늦었는데 개수도 많아서 좀 늦겠는데"라고 중얼거린다. 택배는 보통 월요일에 집화가 가장 많다. 기업단위 배송이 많고, 주말 동안 주문한 물량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배송은 화요일에 정점을 찍고 그 후로 토요일까지 줄어드는 추세다. "배송량이 많으면 개당 수수료를 많이 받으니까 월급은 올라가겠죠. 하지만 퇴근이 늦어지니까…양면적인 감정이 드는 것 같아요." 운전대를 잡은 박씨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처음 도착한 배송지는 15층 규모 빌라다. 1층과 지하에 무인택배함이 있다. 배달할 택배 물건은 100개가 넘는데 빈 무인택배함은 20여칸이 전부다. 관리소장, 경비담당자와 협의해 보일러실에 남은 물건을 보관한다. "옆에 있는 물건과 섞이지 않게 해주세요. 목록 적어서 저한테 주시고요. 다 쌓으시면 열쇠 반납하시고 확인 부탁해요." 깐깐한 직원들 상대하랴, 택배 상자에 동·호수 다시 크게 적고 분류하랴, '배송완료' 바코드를 찍고 문자메시지 발송하랴, 박씨는 말수도 줄이고 눈과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파트단지와 빌라를 중심으로 무인택배함이 늘어나면서 일이 수월해진 건 아닐까 싶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단다. "무인택배함이 아니라 대문 앞에 놓아달라는 사람도 있고, 꼭 직접 받아야겠다는 분도 있어요." 이날 15층 빌라 1동에서도 20여개의 화물은 무인택배함이 아닌 집으로 배달했다. 트럭이 멈춘 지 1시간56분 만에야 110여개의 배송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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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박창환씨(42)가 배달할 택배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 News1 황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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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를 끌고 트럭에 돌아오니 차키도 꽂혀 있고 뒷문은 열려 있다. "아까 안닫았어요. 열고 닫는 것도 시간인데…. '타수'(시간당 배송 수량)도 엄청 떨어지고요." 실제 이날 박씨의 트럭 뒷문은 배달지에 멈출 때마다 한번도 닫히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안에 택배 트럭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일일이 손수레를 이용해 물건을 옮겨야 하는 만큼 동선이 길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산신도시 사태를 겪으며 그와 비슷한 단지들이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단다.

힘든 택배 일의 클리셰 같은 '계단 오르내리기'는 이날 하루 종일 2번밖에 볼 수 없었다. 아파트에 배송할 때도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닫히는 4~5초를 재빠르게 이용할 뿐, 가까운 층이라도 계단으로 다니지는 않으려 했다. "무거운 물건 들고 그렇게 하면 무릎이…. 몸관리는 자기 몫이니까 조절을 해야 해요. 무리하다 아파서 '용차' 쓰면 손해니까요."

'용차'는 '용병 택배차'를 뜻한다. 택배기사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여서 사실상 개인사업자로 간주되는 만큼 직장인처럼 휴가 등의 개념이 없다. 몸이 아프거나 가족과 여름휴가라도 가려면 대타를 구해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용차에는 통상 일당의 2배까지 줘야 한다. 본사에서 주는 수수료는 그대로이니, 나머지 차액은 택배기사 지갑에서 나간다. 돈을 지불해야 쉴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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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박창환씨(42)가 배달 시작 5시간이 넘어서야 차를 잠시 멈추고 햄버거를 먹고 있다. © News1 황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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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개를 배달하고 오후 5시쯤 편의점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샀다. 그러나 일정에 밀리며 배송이 거의 끝난 7시가 다 돼서야 한입을 베어 먹을 수 있었다. 1분40여초만에 햄버거를 목구멍에 밀어넣고 트럭을 몰아 도착한 곳은 다시 편의점이었다. 배달이 끝나고 나면 이제 편의점을 돌며 다른 지역으로 갈 택배 물건을 수거해 가야 한다. 편의점 택배 이용이 늘어나면서 박씨는 편의점마다 5개 이상의 택배를 트럭에 실었다. 편의점 도시락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발걸음을 멈출 여유는 없었다.

편의점 택배 수거를 마치고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들러 택배 30여 상자를 추가로 실었다. "본사에서 박리다매 정책으로 가니까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수거도 더 많이 해야 하고 거래처를 찾아서 소위 '영업'도 기사가 뛰어야 해요." 배송을 마친 박씨의 택배 수거는 오후 10시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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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박창환씨(42)가 거래처에서 받은 택배 상자를 트럭에 싣고 있다. © News1 황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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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하면 결혼 못해…애들 얼굴 마음껏 보고 싶어"

수거한 택배 화물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상차 작업을 하러 물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박씨는 다하지 못한 말을 쏟아냈다. 대리기사, 대리주차(발레파킹) 업체 운영 등을 했던 박씨는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택배 외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1년 365일 중 300일을 오전 6시에서 오후 11시까지 일하다 보니 6살, 10살 두 딸의 얼굴은 일요일에나 볼 수 있다.

"기업에서 52시간 근무가 곧 실현된다고 하죠? 그러면 택배의 모습도 좀 달라질까요? 택배기사도 언젠가 저녁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도 택배기사가 400만원 이상 번다는 보도도 있었던 듯하다. 택배기사가 물건 1개를 배달하고 받는 수수료는 대략 700원 안팎이다. 박씨는 "다해서 400만원을 벌면 세금과 수수료, 화물차 보험, 차량 감가상각 등을 제외하고 대략 250만원가량을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며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을 일하는데 그 정도면 많은 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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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박창환씨(42)가 상자를 세대별로 분류하고 있다. © News1 황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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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돈이 된다는 생각해서인지, 일자리가 없어서인지 청년들부터 60대 퇴직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택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그만둔다고 한다.

"20대에 택배일을 시작하는 청년들도 있는데, 거의 중간에 그만둬요. 택배기사끼리 만나는 것을 빼고는 사람 만날 시간이 거의 없어서 연애는커녕 친구도 못만나기 때문이죠. 택배일을 시작하고 싶으면 연애랑 결혼 먼저 하고 오는 게 좋아요." 농담처럼 던진 박씨의 말에 쉽사리 웃을 수 없었다.

박씨는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자부심을 잊지 않았다. "야근 많이 하는 한국에서 택배기사는 보이진 않지만 없으면 안되는 공기 같은 존재죠." 이날 상차 작업은 오후 11시가 다 돼서 끝났고 박씨는 밤 12시쯤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도 박씨는 오전 5시반쯤 잠에서 깨 물류장을 향했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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