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오르던 농촌 인건비, 최저임금 인상분까지 반영돼 식비·교통비 빼고도 20% 폭등
인력소개소가 인상 부추기기도… 적자 우려에 수확포기 농가 속출
농번기를 맞은 충남 예산군 농가에서 할머니들이 밭일을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
충북 괴산군에서 벼농사와 오이 등 하우스 농사를 짓는 김모(75)씨는 올해 벼농사만 짓고 나머지 농사는 모두 접기로 했다. 최근 인건비가 올라 감당할 수 없어서다. 김씨는 13일 본지 통화에서 "최소한 일당 11만원씩 달라 하니 어디 수지타산이 맞겠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충북 청주시, 괴산군, 진천군 등 지역 인력시장에서는 농사 품삯이 남성 12만원 선으로 치솟았다. 지난해보다 2만~3만원 많다. 복숭아나 하우스 농가에 필요한 숙련된 일손은 15만원까지 부른다. 청주의 한 인력소개소 관계자는 "농번기에는 원래 수당이 최저임금 이상인 데다, 타지의 최저임금 상승분만큼을 더 얹어줘야 해서 최근 오른 임금도 비싼 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농번기 농가에 시름을 더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수시 채용 근로자들의 일당이 추가로 올랐다. 그 부담이 고스란히 농가에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맘때는 모내기, 과일 알 솎기, 양파·마늘 등 작물 작업이 겹치는 농가의 극성수기다. 지난 1일 전남 영암군에서 미니버스를 함께 타고 가다 숨진 할머니들도 일당을 받고 총각무 솎는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영세 농가의 경우 당장 눈앞에 닥친 농사일 처리가 급선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돈을 더 얹고서라도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남 영광군에서 10년 넘게 대규모 수박 농사를 짓는 박모(70)씨는 올해 근로자 인건비 협상에 진땀을 뺐다. 남성 일당을 작년 10만원에서 2만~3만원을 더 올려달라는 작업반장의 요구 때문이었다. 농가에서는 주로 인부 수백명을 관리하는 작업반장을 통해 일용직 근로자를 채용한다. 작업반장이 내세운 인상의 근거는 최저임금 상승이었다. 인부들은 대개 오전 6시~오후 5시까지 11시간을 일한다. 올해 16.4% 오른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을 적용해도 1인당 일당 8만2830원이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농번기에는 10만원을 지급한다. 1만7000여 원을 더 주고 있었던 셈이다. 박씨는 협상 끝에 최저임금보다 3만7000원 정도를 더 얹어 12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남성 인부 20명을 고용할 경우 하루 인건비로 240만원이 필요하다. 작년에 비해 한 달 추가 인건비가 1200만원이나 된다.
박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경남 남해군에서 마늘농사 등을 짓는 하모(75)씨는 요즘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오는 20일 이후에 5280㎡(1600평)의 밭에서 마늘을 수확할 예정인데 아직 인력 20여 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예년 수준보다 다소 높게 품삯을 제시했으나 "그 정도론 부족하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전북 고창에서 수박을 재배하는 김모(71)씨는 "봄날 하루는 다른 계절의 열흘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시기"라며 "결국 남는 게 없더라도 임금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농가에서는 작업 초기 남성 인부를 최소한으로 고용해 집중적으로 일하고, 이후에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70·80대 할머니를 채용하는 식으로 버틴다. 전남 영광과 영암, 전북 고창 등 대규모 수박 재배지에선 여성 근로자의 경우 올해 임금 상승이 없었다고 한다. 8만5000원으로 작년과 같다. 이 액수도 11시간을 적용하면 최저임금보다 2170원이 많다. 지난해는 최저임금(6470원) 기준 1만3830원을 추가로 지급한 셈이다. 그런데 최근 여성 인부들마저도 일당을 2만원 정도 추가 인상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농부들은 이구동성 "할머니들 일당마저 오르면 답이 없다. 그냥 농사를 접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정록 전남대 지리학과 교수는 "농업은 노동력이 대규모로 필요해 인건비 증가는 농민 부담과 직결된다"며 "농업의 특성을 고려한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광=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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