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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제23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千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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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예선 결승1국 <흑 6집반 공제·각 3시간>

白 왕하오양 六단 / 黑 이원영 七단

조선일보

〈제6보〉(74~88)=바둑은 수(手)의 천변만화도 경이롭지만, 실체를 한 가지로만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속성 때문에 신비함을 더한다. 어떤 때는 수리(數理)나 측량 게임으로 보이다가, 또 어떤 판에선 전쟁놀이의 판박이 모델로 다가선다. 어떤 날엔 시(詩)와 그림을 품은 예술로 느껴지고, 다시 볼 때는 영락없는 상거래(商去來) 놀이 그 자체다. 잘 엮은 논리학 교과서로 찾아올 때도 있다. 바둑 한 판에 이 모든 모습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흑이 ▲로 뻗은 장면. 백 74가 이 바둑의 다음 콘셉트를 쫓고 쫓기는 스릴러물로 결정했다. 87까지 흑백 모두 두 눈을 확보하지 못한 유랑자 신세다. 74로 참고도 1에 두었다면 전혀 다른 바둑이 됐을 것이다. 실전보의 급박함에 비해 참고도의 진행은 쌍방의 여유와 배포, 그리고 숨은 야심이 전달돼 오지 않는가.

지난 보까지 상변과 중앙을 무대로 치열한 전투 요령과 거래 기술을 강의하던 이 바둑은 얼굴색을 180도 바꾸고 새로운 모습으로 종반전을 맞이한다. 제목은 '미생마 주변에서 허허실실 놀기'쯤 되겠다. 이래도 한 판, 저래도 한 판이 가능한 것은 바둑만의 태생적 축복이다. 88의 붙임에 반상의 모든 돌들이 다시 갈기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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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 바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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