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에 모인 여성 배우와 감독, 제작자 등 82명이 영화제 레드카펫 위에 줄을 맞춰 서서 영화계의 성 평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을 대표해 케이트 블란쳇이 마이크를 잡았다. 참가자들은 성명서 낭독이 끝나자 잡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흔들어 보이며 연대를 과시했다.
미국 영화감독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고발 사건 이후 불거진 영화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일환이다. 블란쳇과 제인 폰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유명 배우들과 ‘원더우먼’의 감독인 패티 젱킨스 등 영화감독들이 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번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블란쳇과 89세의 프랑스 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함께 대표로 성명을 읽었다.
여성 영화인들은 71년 동안 여성 감독은 고작 82명밖에 칸에 초청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만큼의 수가 한꺼번에 레드카펫을 밟았다. 계단을 오르다 멈춰 서서 성명을 읽은 이유는 여성 영화인이 칸의 계단을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블란쳇은 이어 “고귀한 황금종려상(Palme d‘Or)은 71명의 남성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름을 다 거론하기조차 어렵다. 여성 감독은 고작 2명뿐이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남성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시위는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후보 작품을 낸 감독 21명 중 한 명인 에바 위송의 작품 ‘태양의 소녀들(Girls of the Sun)’ 시사회를 앞두고 열렸다. 태양의 소녀들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 생활하는 여성 난민 부대가 이슬람 성전주의자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상영 전 위송은 잠시 레드카펫을 벗어나 자신의 네 살짜리 아들을 끌어안았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멀리사 실버스틴 ‘여성과 할리우드’ 편집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칸에 여성 감독이 그녀의 아들을 데려왔다. 상황이 변하고 있다”고 올렸다.
지금까지 황금종려상을 받은 두 여성 감독은 뉴질랜드 출신 제인 캠피언과 벨기에 출신 아녜사 바르다다. 이 중 이날 시위에 나서기도 한 바르다 감독은 2016년 명예 황금종려상을 탔다. 명예 황금종려상은 영화계에서 성과를 냈지만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한 감독에게 비정기적으로 주는 상이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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