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해제와 탄핵을 찬성한
초선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
"윤 대통령은 보수의 배신자
그를 싸고돌면 국힘도 망한다
차라리 깨끗하게 결별해야
민주당과도 싸울 힘이 생긴다"
편집자주
한국의 당면한 핫이슈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보수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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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 이후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인터뷰 전날만 해도 새벽 4시 반에 겨우 잠들었다. 계엄 해제에 앞장서고 당내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에 최선을 다했지만, 이후 상황은 악화일로다.
지역구인 울산 남구갑 사무실은 쏟아지는 비난으로 패닉에 빠졌다. 사무실 앞 플래카드는 찢겨졌다. 매일 극렬한 항의 집회가 이어지니 "사무실이 불에 안 탄 것만 해도 다행"이란 소리를 듣는다. 지역구 갈 일 있으면 모자에 마스크 쓰고 옷 안에다 방검복까지 받쳐 입는다.
울산 남구 공업탑로터리에 설치된 김상욱 의원실의 현수막이 훼손됐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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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 마찬가지다. 계엄, 탄핵 의결이 진행 중일 때는 쏟아지는 온갖 욕설 항의 전화에 의원회관 사무실 전화를 한때 모두 끊었다. 지금도 동선이나 대외 일정은 되도록 알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주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울경 지역 세대교체의 첫 번째 타자로 꼽혔고, 울산에서도 '노른자 중의 노른자'여서 당이 시킨 대로만 하면 3선은 따놓은 당상이란 지역구를 깔고 앉았는데도 스스로 '배신자'가 됐다. 그럼에도 "보수의 배신자는 내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국민의힘 초선 김상욱 의원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그 흔한 트리나 카드 하나 없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12월 3일 계엄 직후 국민의힘 의원 중 가장 먼저 국회에 도착했다.
"서초동에서 지인들과 저녁 모임이 있었다. 계엄 소식에 바로 국회로 갔다. 모두들 그러셨겠지만 12·12가, 5·18이 떠올랐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윤 대통령 스타일상 지금 계엄을 풀지 않으면 진짜 피를 보겠구나, 그 생각뿐이었다."
본회의장에 도착했을 때 계엄 해제를 위한 의결 정족수 150명을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동료 의원들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렸다. 국회로 오라고. 계엄을 풀어야 한다고.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발견했을 땐 자기도 모르게 "나라를 구해달라"고 소리쳤다.
"계엄 해제 의결 때까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사실 그때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국회로 가면서 '뒤를 잘 부탁한다' '그간 신세만 지고 간다' '윤 대통령이라면 진압군을 보낼 테니 피를 보게 됐다' '만에 하나 죽더라도 국회에 가야 한다' 같은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고 하더라. 그땐 유혈사태만은 막자, 그 생각뿐이었다."
지난 7일 탄핵 1차 표결에 참석한 김상욱 의원이 당론에 따른 반대표를 던진 뒤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역에 갔다 급히 되돌아왔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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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 유언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느낌인데 그땐 그냥 절박했던 마음뿐이었다."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의 언행은 어떻게 보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사실상 의도적으로 계엄 해제 지연을 노린 게 아니냐, 내란에 동조한 게 아니냐고 의심받는다.
-7일 1차 탄핵 표결 땐 반대표를, 14일 2차 땐 찬성표를 던졌다. 당내 압박이 상당했을 것 같다.
"1차 표결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설득이 있었다.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 눈물로 설득하시더라. 그래도 선배 의원들이고 하니 일단 '네 알겠습니다' 했다. 하지만 탄핵 반대만 외쳐대는 의원총회에 가는 것도, 국회에 그대로 있는 것도 너무 괴로워서 지역구에나 가려고 서울역으로 가다 되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1차 표결 때 헐레벌떡 되돌아왔다.
지난 14일 서울역 대합실에 모인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기뻐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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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탄핵 찬성이 204표에 그쳤다. 가결은 됐지만 230표까지 예상했던 숫자가 확 줄면서 '참 국민의힘스러운 결과다'라는 한탄이 나왔다.
"그 중간에 저를 비롯해 여러분들이 엄청나게 탄핵 찬성을 설득했다. 좀 넘어오시는 듯했는데, 윤 대통령의 담화 등이 겹치면서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그래도 당이 정치적으로 반응을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비교불가다. 박 전 대통령은 개인 비리, 그것도 약간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보이는 죄를 저질렀다면, 윤 대통령의 행위는 내란이자 국헌문란 행위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한 파시즘 친위 쿠데타다. 그런 윤 대통령을 감싸고돈다? 그건 당 자체가 망하는 길이다. 그렇기에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당은 윤 대통령과 깨끗이 단절하고 내란세력 척결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런데 당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당 자체를 해산하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국민의힘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인가.
"서울 강남과 영남을 기반으로 한 80여 명 의원들이 똘똘 뭉쳐서 '우리끼리 다 하겠다, 잘난 척하는 너희들은 다 나가라'고 소리치면 극우당이 될 수밖에 없다. 한번 그쪽으로 쏠리면 더 폭력적이고 더 극우화된다. 그러면 '저 봐라,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이다'라며 민주당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수준으로 가게 된다. 여론이 그러면 국민의힘은 아무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국민의힘도 국민의힘이지만, 스스로 보수라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에 '너희들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수로서 정위치하라, 그래야 이재명의 민주당을 견제할 수 있다'고 질타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내란'이란 말 자체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 9인 체제 구성을 늦추고 더 나아가 탄핵 기각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까지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문제를 빨리 정리해 줘야 한다. 9인 체제가 이뤄져야 한다. 만에 하나,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헌재의 탄핵 기각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윤 대통령이 가만있겠나. 바로 군대 동원한다. 그걸 용납할 국민이 있겠나. 충돌과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다. 내전 상태에 돌입해 나라가 망하는 수순으로 접어든다. 내란은 아니라는 둥,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둥 그런 소리를 한다면 되묻고 싶다. 정말 그런 걸 원하냐고. 그게 보수냐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을 다룰 6인의 헌법재판관이 26일 출근하고 있다. 왼쪽 사진부터 주심 정형식, 헌재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정정미, 이미선, 김복형, 김형두 헌법재판관.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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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왜 패배주의와 열등감에 찌들어 있나. 윤 대통령 문제를 털어내고 제대로 된 정책과 인물을 내서 이번엔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이게 안 되나.
"저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보수가 기본적으로 40~50%인 곳이다. 윤 대통령과 철저하게 단절한 뒤 보수의 가치를 보여 줄 수 있는, 안정적 성장을 위한 공정성, 합리성, 자율성, 개방성을 기본으로 하는 정책을 만들어 다시금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그러면 승산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얼마나 못나 보였으면 표를 안 주나 생각해야 하는데, 내내 민주당 욕만 한다. 그 결과가 뭔가. 대선에 내놓을 후보 하나 제대로 없는 정당 아닌가."
-그럼에도 왜 그런 언행을 보이나.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얘기는 '윤 대통령 하나 감옥 가면 끝일 줄 아냐, 줄줄이 다 간다'는 거다. 정말 걱정들 많이 하는 것 같다. 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결국 윤 대통령과 철저히 단절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계엄은 잘못이지만 지역구민 의견 때문에 탄핵엔 반대한다'던 대구 북구갑 우재준 의원의 발언은 한국 정치에서 기이하게도 몹시 현실적이다.
"우 의원이 저와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는 의원 중 한 명이다. 사실 저도 그 소리 매일 듣는다. '너 뽑아준 사람은 우리야, 우리는 윤 대통령이 좋아, 그런데 왜 우리 말을 안 들어' 같은 얘기다. 지지자 뜻을 잘 받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국가이익과 소신을 좇아야 한다.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건, 보수주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위배된다."
-'여전히 우리가 여당'이라는 권성동 원내대표에 이어 권영세 비대위원장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극렬 지지층만 모아서 버티기로 작정했다고 국민에게 비친다. 80여 명 의원들이 똘똘 뭉쳐 당권만 놓치지 않으면 아무리 큰 위기가 닥쳐도 다음에 공천받아 다시 의원 할 수 있다, 그럭저럭 버티다 민주당이 실수하면 집권도 가능하다, 그 생각만 한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권성동(왼쪽) 원내대표가 걸어 들어가고 있다. 앞줄 오른쪽은 이날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된 권영세 의원.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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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에서 정치를 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강남과 영남 두 곳에서만 버틴다는 점에서 '양남당', 혹은 '영남 자민련'이라 불린 지 오래됐다.
"나 스스로 내가 보수주의자이자 국민의힘은 정통 보수 정당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정치를 한다면 당연히 국민의힘에서 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들어와서 실망을 한 셈이다."
-김상욱 의원 개인의 신변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2차 탄핵 표결이 가결된 뒤 '두 달 안에 감옥에 보내겠다'는 말까지 이런저런 음해제보가 쏟아진다고 들었다. 지금은 여론이 심상치 않으니 내버려 두겠지만, 당 입장에서야 아무래도 나를 본보기로 삼아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제2의 김상욱'도 막고, 자신들도 일치단결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겠나. 다음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3년, 괴로운 시간이 오리라 생각하고 있다."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차라리 욕먹을 거 시원하게 먹자, 요즘은 그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이제껏 한 행동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초선이 한번 튀어 보려다 저지른 일'로 끝나지 않으려면, 보수 곁에 극우가 있는 게 아니라 보수와 극우는 상극이란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국민의힘이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면, 욕 제대로 먹어 보자는 생각이다. 당장 효과가 없더라도 10명 중에 2~3명만이라도 '아차차'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바랄 게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 중 하나가 윤상현 의원과의 설전으로 유명해진 국회의사당 앞 1인 피켓 시위였다. "성격 자체가 원래 어디 나서서 내 주장을 내세우는 스타일도 아니고, 또 초선이니까 국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열심히 보고 배워야겠다"고만 생각한 그로서는 나름대론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김 의원은 "12월 3일 계엄의 밤이 나를 각성시킨 것 같다"며 웃었다.
윤 대통령 탄핵 2차 표결 직전인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윤상현(왼쪽) 의원과 1인 시위 중인 김상욱 의원이 탄핵 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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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울산에서 변호사를 했는데 그때 잘 봐주신 분들이 '저런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며 밀어주는 여론이 생겨났다. 계속 사양하다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됐다. 그게 전부다."
-지금은 그분들이 곤란하게 됐을 것 같다.
"안 그래도 그런 전화 많이 받는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됐습니다밖엔 드릴 말씀이 없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다. 김 의원의 아버지는 "여든이 다 된 지금도 월 150만~200만 원 정도 받는 염색 공장을 다니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었다. 그래서 스물다섯, 졸업도 하기 전에 법대 동기생들 중 제일 먼저 취직했다. "사법시험 1차에 붙고 2차가 남았는데 이리저리 계산해보니 최소 월 100만 원은 필요한데 그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고려대 법대인데 부산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선 울산에서 개업했다.
"내가 로스쿨 1기다. 고시생과 달리 로스쿨 학생은 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그게 좋았다. 은행 근무 경험을 살리려다 보니 '금융특화'를 뽑는 부산대 로스쿨이 제일 유리했다. 그런데 막상 변호사가 되니 오라는 곳이 없었다."
-로스쿨 초창기엔 실력에 대한 우려도 있고, 어떻게 뽑아야 할지 잘 몰랐다 하더라.
"울산을 간 게 그 때문이다. 로스쿨 변호사를 뽑는 곳이 없었다. 아무 연고도 없지만 울산에서 유일하게 뽑기에 일단 갔다."
그게 울산의 송철호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알려진 그 송 변호사다. 물론 나중에 독립했고 울산 최대 로펌을 만들어 큰돈 깨나 만지는 변호사가 됐지만, 이런 사정 때문에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정체가 의심된다'는 비판을 달고 살았다.
12월 3일 계엄의 밤 당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건물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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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진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좀 다르다. 보수는 사회의 안정적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 합리, 개방, 포용 같은 가치를, 제도적으로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한국은 보수가 중심이어야 한다 믿는다. 4대 열강에 둘러싸인 나라가 열강들의 전쟁터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정적 성장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야말로 보수의 배신자'라는 주장과 맥락이 같다.
"그렇기에 윤 대통령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의 모든 가치를 저버렸다."
-마지막으로 개헌 얘기가 나온다. 박근혜 탄핵 때도 그랬지만.
"결국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 임기를 어쩌지 못해 이번 사달이 난 것이란 점에서, 국민 여론에 즉각 즉각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론 의원내각제 개헌이 옳다 생각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윤 대통령의 잘못을 호도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개헌이 논의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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