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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자동차 외형을 부풀렸다…비만은 꼭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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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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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전시문화공간 '현대카드 스토리지' 지하 2층. 오른쪽 흰 단상에 양동이 2개가 놓여 있다. 왼쪽 흰 단상엔 각종 세제가 놓여 있다. 빨래나 청소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단상 위에 그려진 작가의 드로잉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오른쪽 단상에서는 양동이 안에 들어가고 나머지 양동이를 뒤집어 써야 한다. 왼쪽 단상에서는 두 사람 몸 사이에 세제를 끼우고 사진을 찍으면 된다.

딱 1분만 투자하면 당신도 살아있는 조각이다. 이 유쾌한 퍼포먼스 'One Minute Sculpture(1분 조각)' 작가는 오스트리아 현대미술 거장 에르빈 부름(64·사진).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오스트리아 국가관 작가로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이 런던 테이트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리 퐁피두센터,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최근 스토리지에서 만난 작가는 "1분 동안 도구를 사용해 포즈를 취한 후 사진을 찍으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은 기록으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이 작업을 해온 그는 관객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소통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사용된 도구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미술관에 기증했다. 작가와 동행한 런던 테이트 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사이먼 베이커는 "아마 우리 미술관 소장품 중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작품일 것"이라며 "이렇게 일상적인 것들을 예술품이라고 세관에 신고하고 들여오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이번 전시작 70점 중 48점이 테이트 미술관 소장품이다. 현대카드와 테이트 미술관이 협력해 부름의 국내 첫 개인전 '원 미닛 포에버'를 열었다.

지하 1층 전시장에는 한껏 부풀어오른 파란색 자동차 'Fat Car(살찐 차)'가 있다. 두 달 동안 실제 자동차 엔진 부분을 제거하고, 그 뼈대를 스티로폼과 섬유 조직으로 덮고 깎아냈다. 포동포동 살찐 모양새가 마치 장난감 자동차 같다. 조각의 본질인 부피를 왜곡함으로써 비만에 부정적인 현대 소비사회를 위트 있게 비판한 작품이다. 작가는 "마치 자동차가 유기물처럼 스스로 자라고 모양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것 같지 않나.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모순된 가치를 보여주고자 한다. 형태가 바뀌면 내용도 바뀐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만 살찌운 게 아니다. 1993년 가장 먼저 자신의 체중을 늘렸다. '8일 만에 L 사이즈에서 XXL 사이즈가 되는 법'을 기록한 책을 냈다. 전시장에는 음식 섭취 방법과 행동 요령 등을 쓴 책의 낱장이 진열돼 있다. '누워서 먹으며 독서하거나 TV 보는 동안 밀크초콜릿바 2개 먹기' '저녁 식사 메뉴로 고기와 밥·감자 30개·빵' '오후 간식으로 달콤한 사이다 1리터' '새벽 2시 도넛 2개' 등이 적혀 있다.

이렇게 먹은 다음에 작가는 살찌기 전과 후 모습을 촬영한 사진 작품 'Me/Me Fat(나/살찐 나)를 전시장에 걸었다. 살을 찌우는 행위를 통해 비만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노골적으로 저항했다.

작가는 "체중과 사회적 부, 권력 사이 연관성을 탐구했다"며 "이 작품을 계기로 조각 작품의 부피를 반복적으로 늘리고 줄였다"고 말했다. 이후 미술관과 집, 자동차 형태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2005년 말하는 집 영상 'Am I a House(내가 집인가요)'와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리는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Ship of Fools(바보들의 배)'도 한국 나들이를 하러 왔다. 1970년대식 캐러밴(이동식 주택) 곳곳에 구멍을 뚫고 의자와 테이블 등 다양한 구조물을 부착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민 등 이동성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전시는 9월 9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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