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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난민·反EU… '동유럽 골목대장' 헝가리 총리 4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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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독극물'이라 한 오르반, 젊은층 압도적 지지받으며 압승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민족주의 내세운 이웃 나라들과 EU 정책에 더 강하게 맞설 듯

동(東)유럽에서 EU(유럽연합)에 반기를 들며 반(反)난민 정책을 주도한 빅토르 오르반(55) 헝가리 총리가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하며 4선(選)에 성공했다. 오르반의 4선 성공으로 동유럽에서 우파 민족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동유럽 대 서유럽' 대결 구도가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9일(현지 시각)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헝가리 총선 개표가 98.5% 진행된 결과 오르반이 이끄는 여당 피데스가 전체 199석 중 133~13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단독으로 개헌(改憲)이 가능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오르반은 1998년 35세에 당시 유럽 최연소 총리로 취임해 4년간 재임했다. 이후 8년간 야당 생활을 한 뒤 2010년 총선에서 이겨 다시 총리에 올랐다. 이때부터 내리 세 번 총선 승리를 이뤄내며 2022년까지 장기 집권하게 됐다. 오르반은 승리가 확정된 뒤 "역사적인 승리"라며 "우리는 헝가리를 구할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오르반은 언론 장악, 시민단체 탄압 등을 서슴지 않아 '빅테이터'(빅토르 오르반과 독재자를 뜻하는 딕테이터의 합성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하지만 반난민을 앞세워 민족주의를 자극한 것이 먹혀들어가 압승을 거뒀다. BBC는 "난민에 거부감이 강한 젊은 층이 오르반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했다. 2008년 좌파 정부의 실패로 IMF(국제통화기금)에서 받은 구제금융을 2013년 모두 갚는 등 경제 분야 실적이 있는 것도 오르반이 승리한 원동력으로 꼽힌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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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언론은 난민을 '독극물' '무슬림 침략자'라고 부르며 동유럽 골목대장 역할을 하는 오르반의 정치적 입지가 확고해지면서 동유럽이 EU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독일·프랑스 등 EU의 중심인 서유럽과 헝가리·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의 대립이 뚜렷해지면서 EU가 내세우는 '하나 된 유럽'이라는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르반은 2014년 중동으로부터 난민 유입이 본격화되자 남쪽 국경 전체에 장벽을 쌓아 난민 유입을 막았다. EU가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가별 난민할당제를 반대하며 이때부터 단 한 명의 난민도 받지 않았다. 오르반은 연초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제국이 아니라 자유로운 국가동맹을 원한다"고 했다. EU가 상전 노릇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동유럽에서 우파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반(反)EU 행보를 하는 나라는 한두 곳이 아니다. 헝가리 못지않게 EU에 강경하게 맞서는 나라는 폴란드다. 폴란드는 지난해 법원장 인사권을 법무장관이 행사하게 바꾸는 등 3권 분립 원칙을 훼손하며 사법부를 무력화시켰다. EU가 "폴란드의 EU 내 의결권을 정지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내정간섭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상임회의 의장이 "폴렉시트(폴란드의 EU 탈퇴)가 걱정된다"고 할 정도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반난민 노선 선봉에 서 있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난민의 조직적 침공을 저지하자"고 했고, 안드레이 키스카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EU의 난민할당제는 불행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을 계기로 서유럽과 러시아가 외교 갈등을 빚는 가운데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편을 드는 경우도 나타났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대다수 EU 회원국들이 연대한 '러시아 외교관 추방'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을 맡은 불가리아도 "러시아 외교관 추방은 없다"고 했다.

서방 언론들은 EU가 동유럽의 집단 반기에 맞서야 하는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한다. 뉴욕타임스는 "1989년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동유럽에서 퍼진 자유민주주의가 더 이상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강경 노선을 걷는 정치 지도자들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동유럽이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은 EU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보다 더욱 위협적일 수 있다"며 "동유럽 지도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오르반의 뒤를 따르고 있지만 EU가 이런 움직임을 제어할 현실적인 힘이 없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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