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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손 맞잡은 한·중·일 전파망원경…허블이 울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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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래&과학]

세 나라 21개 전파망원경 연결

지름 5000㎞ 우주관측망 구축

망원경 간 거리만큼 관측력 향상

한라산서 서울 동전글씨 읽을 정도

미·유럽 네트워크보다 15배 우수

우주 생성 비밀 파헤칠 ‘돋보기’

올 하반기 가동…블랙홀 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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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접시 크기가 11~500m인 21대의 전파망원경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 네트워크(EAVN). 망원경 사이의 거리가 짧게는 6㎞에서 멀게는 5000㎞이다. 가장 높은 해상도(분해능)는 22㎓에서 0.5밀리각초에 이르러, 한라산 꼭대기에서 서울에 놓여 있는 동전 속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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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구조와 생성에 관한 문제는 현대 과학의 중요 쟁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믿을 만한 우주의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된 우주의 상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보해야 합니다. 전파천문학은 수십억 광년 떨어진 아주 먼 곳에서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도달하는 라디오파(전파)는 아주 먼 곳으로부터 수십억 년 동안 빛의 속도로 달려와 지구에 도착한 것들입니다.”

1974년 노벨상 위원회가 물리학상 시상을 하면서 발표한 연설문 일부이다. 당시 두 명이 받은 노벨물리학상의 하나는 펄서(맥동변광성)를 발견한 앤터니 휴이시에게 돌아갔다. 펄서는 별이 사멸하면서 생긴 초신성 잔해가 중성자별로 뭉쳐지는 단계에 일정한 주기의 펄스 형태로 전파를 방사하는 천체이다. 펄서를 실제 관측한 사람은 그의 제자인 조슬린 벨 버넬임에도 노벨상에서 제외돼 휴이시가 구설에 올랐다. 버넬이 펄서를 발견한 건 전파간섭계 덕분이었다. 그해 또 하나의 노벨물리학상은 전파간섭계를 개발한 마틴 라일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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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뒷배경은 미국 전파망원경 네트워크(VLA)로 관측한 거대 타원은하 M87 영상. 앞쪽 확대 그림은 한-일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관측망인 ‘카바’(KaVA)로 그 중심부에 있는 초대형 블랙홀에서 빠져 나오는 제트를 관측한 영상.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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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은 어떤 물체가 방사하는 빛(파동)의 파장이 38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보다 길고 780㎚보다 짧아야 볼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파장이 1㎜보다 길 때를 일반적으로 전파라고 한다. 가시광선은 전파에 비해 파장이 천배 이상 짧다. 같은 구경이라면 광학망원경이 전파망원경보다 분해능이 5000~1만배 좋다. 분해능은 가까이 있는 물체를 구분해 보는 능력을 말한다. 망원경이 크면 클수록 구분하는 능력이 좋아진다. 하지만 전파망원경을 서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전파의 간섭 현상을 이용해 천체의 위치나 화상을 얻는 간섭계를 이용하면 분해능이 훨씬 좋아진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전파천문연구그룹 선임연구원은 “지구상 망원경은 대기 교란 효과 때문에 공간분해능이 1초보다 좋아지지 않는다. 우주에 설치한 허블망원경이나 허블의 차세대 망원경인 제임스 웨브도 분해능이 0.1초보다 좋지 않다. 하지만 전파망원경은 멀리 떨어뜨려 놓을수록 공간분해능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공간분해능은 두 물체를 분리해 볼 수 있는 최소각으로 표시한다. 1초는 각도 1도의 3600분의 1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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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트를 동아시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 네트워크(EAVN)으로 관측한 영상이다. EAVN 영상이 훨씬 선명하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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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연은 최근 국내에서 설치된 3대의 전파망원경을 포함해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의 전파망원경 21대를 연결한 ‘동아시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 네트워크’(EAVN)를 구축해 본격 가동 준비에 나섰다고 밝혔다. 천문연은 서울 연세대와 울산대, 제주 탐라대에 21m 전파망원경을 배치해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을 운영하고 있다. 전파간섭계의 원리는 망원경들을 전선으로 연결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간섭무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전선의 연결이라는 공간적 제약이 있었다.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란 전파망원경이 수신한 전파 신호를 특수한 자기테이프에 기록한 뒤 테이프를 한곳에 모아 전파 신호를 컴퓨터로 간섭시킴으로써 천체의 정확한 위치나 화상을 얻는 방식으로, 공간적 한계가 없다. ‘이에이브이엔’은 가장 먼 중국 신장 우루무치 난산망원경과 일본 도호쿠 지방 미즈사와망원경을 연결하면 거리가 5000㎞에 이른다. 이에이브이엔의 가장 높은 분해능은 0.5밀리초, 곧 각도 1도의 720만분의 1이다. 한라산 꼭대기에서 서울에 놓여 있는 동전 속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해능력을 지녔다.

이에이브이엔은 한국과 중국에 두 개의 상관센터를 두고 있다. 상관센터에서는 전파망원경으로 얻은 신호로 간섭무늬를 만들고 푸리에변환과 역변환이라는 기법으로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곳에는 전파망원경 관측에서 생산되는 방대한 데이터가 쌓인다. 한 망원경으로 하루 8시간 관측을 하면 3.7~7.4테라바이트의 데이터가 나온다.

미국(VLBA)과 유럽(EVN)도 브이엘비아이 네트워크를 운영해오고 있지만 이에이브이엔은 상대적으로 높은 주파수에 맞춰져 있어 분해능이 훨씬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네트워크는 주로 중성수소가 관측되는 1.4㎓에 맞춰져 있는 데 비해 이에이브이엔은 22㎓에 맞춰져 있어 분해능이 15배 정도 좋다고 손봉원 선임연구원은 설명했다.

이에이브이엔은 현재는 실험 관측 중이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천문연구자들한테서 제안서를 받아 관측 시간을 할당할 계획이다. 이에이브이엔은 주로 천체에서 나오는 전파의 일종인 메이저 신호와 초신성·감마선 폭발처럼 변화가 빠른 천체의 특성, 초대형 블랙홀이 방출하는 제트현상 등을 관측하는 데 활용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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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우주전파관측망을 구성하고 있는 3개의 21m 전파망원경 가운데 제주(탐라대)에 설치돼 있는 것.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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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광선 망원경은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서 빛이 나는 천체들, 곧 열적인 복사를 내는 항성들을 주로 관측하는 반면 전파망원경은 비열적 복사를 주로 관측한다. 전자들이 상대론적 속도로 가속된 상태에서 자기장을 만나면 입자와 자기장이 충돌하면서 온도와 상관없는 빛이 나오는데, 이 비열적 복사는 초대형 블랙홀 주변에서 나온다. 블랙홀에 물질이 빨려들어가면서 에너지 반은 끌려들어가고 나머지는 방출돼 원반처럼 돌아간다. 이때 원반 양쪽 방향으로 강력하게 물질이 빠르게 방출되는 현상을 제트라고 한다. 손봉원 선임연구원은 “한·일 공동 브이엘비아이 관측망인 카바(KaVA)로 거대 타원은하 M87 중심 부근의 초대형 블랙홀 제트를 관측한 영상으로 분석했을 때는 제트가 블랙홀에서 상당히 바깥쪽에 이르렀을 때 빛의 속도에 다다르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에이브이엔으로 다시 관측해 훨씬 선명한 영상을 확보해보니 제트가 훨씬 이전에 이미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메이저는 별이 뭉쳐지는 지역의 차가운 분자 가스들이나 별이 죽어갈 때 쏟아져 나온 분자 가스들이 부딪히면서 나오는 레이저를 말한다. 이들을 관측하면 별의 생성과 사멸 등 우주 형성의 비밀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 이에이브이엔이 맞춰져 있는 22㎓에서 나오는 물 분자와 일산화규소 메이저 등은 별의 죽음 연구에 중요하다. 손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낮은 주파수에서도 비열적 천체들이 잘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20여년 연구를 진행해보니 블랙홀 주변의 전자구름층이 추정했던 것보다 두꺼워 구름을 뚫고 보려면 더 높은 주파수 관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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