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투성이’ 대법원 대책
“하루라도 근무 겹치면 배당 안 한다” 했지만 실제론 안돼
내규 저촉 안된다는 고등학교·대학교 동문 사례 ‘38건’
당시 대법원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법관과 연고관계가 있다는 사정을 사건 수임의 도구로 악용해 온 일부 변호사의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법부 역시 이러한 행태가 가능하도록 틈을 보인 측면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고 강조했다.
11일 경향신문이 지난해 한 해 동안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 중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관여한 사건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 같은 대법원 대책이 적용되지 않은 사건이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영철 전 대법관은 2009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법관으로 근무했다. 현 대법관 중에서는 6명이 신 전 대법관과 근무시기가 겹친다. 2012년 8월부터 대법원에 재직한 김창석 대법관, 2014년 3월부터 재직한 조희대 대법관, 2014년 9월부터 재직한 권순일 대법관 등이다. 신 전 대법관은 2016년 전관예우를 우려한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그의 개업 신고를 반려하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되레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 전 대법관이 관여한 사건 중 5건의 주심이 그와 근무시기가 겹치는 대법관들에게 배당된 것으로 조사됐다. 1건은 김 대법관, 2건은 조 대법관, 2건은 권 대법관이 주심이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제기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부분재액화 기술’ 특허등록 무효소송의 경우 신 전 대법관이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측 대리인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조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참여하는 사건 중에는 구체적인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사건도 많지만, 심리 전에 재판부 배당을 하는 것이므로 배당 단계에서 원칙이 지켜졌어야 한다”고 했다.
차한성 전 대법관은 지난해 선고된 상고심 사건 중 관여한 사건 수가 10건으로 다른 전직 대법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근무시기가 겹치는 대법관이 주심으로 배정된 경우가 1건 있었다. 2008년 3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대법관으로 근무한 차 전 대법관은 김소영·김창석·김신·고영한 등 4명의 대법관과 근무시기가 일부 겹친다. 롯데쇼핑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소송의 경우 1심과 항소심에선 참여하지 않은 차 전 대법관이 상고심에서 롯데쇼핑 측 대리인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 사건의 주심은 김소영 대법관이 맡았다.
대법관과 근무시기가 겹치지 않아 대법원 내규에는 저촉되지 않더라도 고등학교·대학교 동문, 사법연수원 동기 등 개인적 연고가 있는 대법관이 주심으로 배정된 경우도 있었다. 경기고 출신인 안대희·손지열·이홍훈·김능환 전 대법관이 관여한 사건에서 같은 경기고 출신인 박상옥, 김용덕(올해 1월 퇴임)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사례가 모두 합쳐 38건이었다.
대법원은 최근 차 전 대법관의 변호인단 합류로 논란이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혐의 상고심 사건에서도 같은 경북고 출신인 조희대 대법관을 주심으로 배정한 바 있다. 차 전 대법관은 이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변호인단에서 자진 사퇴했다. 변협 등은 대법원이 2016년 내규를 마련할 때 근무경력뿐 아니라 이 같은 연고관계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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