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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희멀건한 밤 하늘…‘별빛’과 거리 먼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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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시 ‘우리는 별들로 이뤄져있다’-

청량리-영등포 밤하늘, 우주선발사기지, 개기월식 풍경 등

다양한 장소 시점에서 본 이 시대의 별과 우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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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연 작가의 2014년 작 <점멸>. 인류가 찍은 행성들의 사진을 낯선 불빛처럼 확대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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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한다. (…) 왜 지도 위의 점처럼 창공에 반짝이는 별한테는 갈 수 없을까? (…) 별까지 가려면 죽음을 맞아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는 것이다.”

죽어서 미술의 성자가 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1888년 6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밤하늘의 별을 본 상념을 써내려갔다. 오직 죽음만이 이승의 기차처럼 별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수억 수만 광년을 거쳐 빛으로 지구에 도착한 별은 현실에서 어루만질 수 없는 피안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는 것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천상의 빛나는 점들’을 대상으로 온갖 상상과 소망이 피어올랐던 건 지구 행성의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온 인간들의 숙명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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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하 작가의 영상작품 <우주만화경>의 한 장면. 미국 나사 우주발사기지에 폐허처럼 남아 있는 과거 아폴로 로켓 발사대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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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5가 청년미술공간 두산갤러리에 펼쳐진 신진기획자 3명(김민정, 신지현, 송고은)의 전시 ‘우리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흐의 시대와 전혀 다른 21세기 시각 환경의 극명한 이질성을 드러내는 전시다. 고대부터 인류의 낭만적 관심사였던 하늘 보기의 시선을 제재로 내건 이 전시에서 청년 작가들은 별 대신 희멀겋게 변한 밤하늘과 우둘투둘한 땅바닥 표면, 인공 영상 등에서 낯선 우주의 상들을 꺼내놓는다.

들머리에 있는, 156개의 작은 화폭 조각들을 붙여 만든 강동주 작가의 회색빛 하늘 그림 <155분37초의 하늘>이 먼저 눈에 띈다. 5년 전 어느 날 서울 청량리~영등포 구간을 두어시간 산책하며 찍은 하늘 풍경 사진들을 옮긴 것이다. 뒤쪽에는 울퉁불퉁한 서울 도시 거리를 거닐면서, 땅에 화폭을 대고 연필로 요철을 돋우도록 드로잉한 땅 그림 모음 <1시간58분3초의 땅>이 붙어 있는데, 마치 별구름(성운)들의 거칠고 성긴 흑백톤 이미지처럼 다가온다. 어둠의 심연과 별들의 생생한 빛을 실감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시각적 비애감이 와닿는 그림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박민하 작가의 17분짜리 동영상 <우주 만화경> 상영실이 있다. 신들이 몸을 불태워 태양과 달을 탄생시켰다는 고대 마야 신화와 1967년 미국 아폴로 우주선 폭발 사고, 월트 디즈니가 만든 가상세계 체험공간 등이 배경화면과 함께 흐른다. 거울에 비친 하늘과 습지를 배경으로 한 미국 플로리다의 나사 발사기지와 폐허의 신전처럼 보이는 로켓 발사대 아래에서 내려다본 뻥 뚫린 하늘 등이 뒤엉킨다. 우주와 빛에 대한 복잡다기한 서사와 낯선 이미지들이 묘한 흥미를 일으킨다. 깨진 유리 조각이 등불빛을 받아 별처럼 빛나는 모습이나 행성 사진을 낯선 점 모양으로 확대한 그림(양유연), 감각 너머 우주에 대한 열망을 담은 천체관측기기의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전명은), 젤 모양의 금속성 물질이 기계조작으로 흐르고 뭉치는 장면들을 우주 심연의 상징적 이미지로 담아낸 영상과 기계설치물(김윤철) 등도 맥락은 비슷하다. 이미지 자체로 바로 교감하기는 어렵지만, 불안정과 유동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21세기 청년 작가, 기획자들의 시선과 내면 세계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전시판이다. 24일까지. (02)708-505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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