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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WTO 제소로는 미국 못당해…美 움찔할 카드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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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전방위 통상압박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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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국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입니다. WTO 제소뿐만 아니라 범부처가 나서서 미국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태양광 제품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에 이어 이번에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한국산 철강에 대해서도 보호무역주의 칼날을 꺼내 들었다.

최근 북핵 문제와 남북 대화 등을 둘러싼 한미 간 외교안보 갈등이 무역 규제에까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달 세이프가드에 이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수입 규제 권고안이 나오는 과정에서 한국 통상당국의 설득이 미국 측에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점은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통상 압박이 부당하기 때문에 WTO 제소를 검토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통상과 안보를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통상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통상과 안보를 연계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둘을 연계해 미국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매일경제신문은 한국산 철강 수입 규제 등 대미(對美) 통상 현안 관련 긴급 지상 좌담회를 열었다. 지상 좌담회는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주제네바 대사·이름 가나다순) 등 통상 전문가들과 철강업계를 대표해 이윤희 포스코경영연구원 철강연구센터장이 함께했다. 다음은 지상 좌담회 일문일답.

―미국이 전방위적인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정철 본부장=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국제 다자 통상의 판을 완전히 흔들며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WTO 등 국제 질서를 수용하기보다는 미국 우선주의, 즉 자국법과 자국 이익이 국제 질서와 글로벌 규범보다 우선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관세를 낮게 해 주고 있는데 상대국도 유사하게 해줘야 한다는 게 기본 인식이다.

▷최석영 고문=이번 철강 보고서에는 쿼터 할당, 관세 부과 등 세 가지 권고안이 있는데 자의적이고 차별적이다. 대상 국가 선정도 멋대로 했고, 부과되는 관세율도 합리적인 계산 없이 제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세'를 얘기하는데 상대국 관세가 높으면 미국도 관세를 높이겠다는 얘기다. 통상 전문가로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다. 이런 조치에 한국이 포함됐다는 게 뼈아플 뿐이다.

―53% 고율 관세 부과 대상국에 캐나다 일본 독일 등이 빠지고 유독 한국만 포함됐다. 어떤 배경인가.

▷박태호 원장=이번 규제는 사실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전 세계에서 중국 철강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이 점이 한국에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간 것 같다. 미국은 중국산 철강이 한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미국에 수출된다는 의심을 갖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한국을 고율 관세 부과 12개국에 포함시켰다.

▷정 본부장=미국은 일단 안보에 문제가 된다면 우방국이라도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국 입장에서 정서적으로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통상 문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우방국이냐 아니냐는 구도로 보는 것은 성급한 분석이다. 왜 다른 우방은 빼고 한국만 넣었냐는 논리로 대응하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

▷이윤희 센터장=국가별 철강 수입량 추이를 기초적인 판단 근거로 삼고, 과거에 비해 수입증가율이 높은 국가 중심으로 12개 규제 대상국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정치외교적 또는 정무적 판단도 작용했을 수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강관과 파이프 수입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한국의 유정용 강관, 라인 파이프 등의 대미(對美) 수출이 급격히 증가한 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이 한국과 외교안보 분야 갈등 불만을 통상 쪽에서 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정인교 교수=한미 간 통상 갈등이 심해지면서 컨트롤타워 문제는 그동안 많은 지적이 있었다. 지금은 개별 부처가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다. 결국 청와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미 간 통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박 원장=1차적으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통상 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경제부총리가 1차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주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지금처럼 사안이 더욱 중대할 때는 청와대를 통해 대통령이 최종 판단을 해야 한다.

▷정 본부장=부처 간 공조뿐만 아니라 미국 수입 규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다른 나라와 공조 수위를 높여 미국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세이프가드에 대해 WTO에 제소하고 철강에 대해서도 12개국만 선별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WTO 제소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정인교 교수=GATT(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21조에는 국가 안보로 인한 무역 규제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한국 등 12개국에만 차별적인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예외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최석영 고문=세이프가드는 WTO로 가면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2~3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한국 기업 피해가 발생한다.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이 같은 무분별한 무역구제 조치가 남발되지 않도록 명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박태호 원장=미국의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은 한미 FTA 개정 협상이나 대북 관계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통상 부처와 외교 부처를 모두 포함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범부처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4월 11일 데드라인…트럼프 '최악의 시나리오' 선택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상무부가 제시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수입 규제 권고안에 대해 오는 4월 11일(현지시간)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 상무부가 제시한 안은 △모든 수입 철강에 24% 관세 부과 △한국, 브라질, 중국, 인도, 러시아 등 12개국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53% 관세 부과 △모든 국가의 철강 수입을 지난해의 63%로 제한하는 쿼터 설정 등 세 가지다. 국내 철강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두 번째 안이다. 한국산 철강에 53%의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훨씬 불리한 조건에서 수출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재 포스코의 열연·냉연 강판에는 이미 60%대 반덤핑·상계관세가 부과된 상태인데 여기에 두 번째 안이 채택되면 관세율이 110% 이상 뛰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1일까지 이번 철강 수입 규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어떻게 전망하나.

▶이윤희 센터장=미국 철강업체 보호 차원에서 12개국에 53% 관세를 부과하는 두 번째 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미국 정부 입장에서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를 타깃으로 수입을 제한할 경우 중국의 보복 가능성, 국제사회 비판, 미국 내 수요산업 반발 등 우려가 있어 수위 조절을 할 가능성은 있다.

▶최석영 고문=미국 상무부가 권고한 세 가지 방안 중 어느 하나도 한국에 유리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경쟁국과 차등 대우를 받는 것이 불가피한 한국 중국 브라질 등 12개국에 대한 53% 고율 관세 부과가 가장 아픈 부분이다. 이 방안이 채택되지 않게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

▶정철 본부장=4월 11일 전까지 우리 정부와 업계가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이를 완전히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미국 정부, 의회, 업계 등을 상대로 한 아웃리치(접촉) 노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미국의 잇단 통상 압박에 대해 정부는 아웃리치 강화 외에는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박태호 원장=일련의 통상 압력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같은 문제를 접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공조해 공동 대응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기업 대표급들이 미국을 방문해 미 행정부, 의회, 업계 단체, 싱크탱크 등과 만나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최석영 고문=미국이 외교안보 갈등에 대한 불만을 통상을 통해 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만한 근거는 없다. 이 때문에 통상당국으로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미국과 무역을 하는 여러 나라 중에 특히 한국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다.

▶정인교 부총장=대미 수출 물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수출 물량을 줄인 일본은 12개 규제 대상국에서 빠졌다.

―한국은 작년 대미 무역흑자를 미국의 교역 10대 대상국 중 가장 많이 감소시키는 성의를 보였다. 그런데도 미국의 통상 압박은 유독 한국에만 가혹한데 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최석영 고문=우선 정부에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미국에 대해 설득력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정인교 부총장=정치외교적으로 본다면 작년 한미동맹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노력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향후에라도 이 같은 노력을 미국 측에 공개 채널 또는 비공개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고재만 기자 / 이유섭 기자 / 우제윤 기자 /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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