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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美 안보불만 통상과 묶어 때리는데…靑은 안보·통상 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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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전방위 통상압박 ◆

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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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미국의 전방위적인 통상 압박에 대해 정면 대응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세탁기, 태양광, 철강 등 한국 수출 품목에 대한 미국의 잇따른 수입 규제뿐만 아니라 미국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안보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놓고 미국과 대북 공조에 집중하다 보니 통상 분야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전략적으로 침묵하며 낮은 자세(low key)로 대응해왔는데 이번에 국익을 위해서 정면 돌파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지시했다.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한국을 옥죄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문 대통령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도전을 이겨냈듯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노력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대응해가야 할 것"이라며 민관 협력에 기대를 모았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한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우리나라는 수출 규모가 15.8% 증가해 경제 성장 회복에 크게 기여했지만 최근 환율 및 유가 불안에 더해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철강, 전자, 태양광, 세탁기 등 우리 수출 품목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 확대로 해당 산업의 국제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수출 전선에 이상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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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전부터 미국의 반덤핑 관세 등 무역규제 조치로 수출액이 줄어들고 있었다. 미국은 2016년 5월 한국산 도금강판에 47.8%의 반덤핑 과세를 부과한 데 이어 같은 해 7~9월 한국산 냉연강판, 열연강판 등의 품목에도 9.49~59.72%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물렸다. 지난해 4월에는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한 반덤핑 판정을 내렸고, 지난달 현대제철 송유관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6.23%에서 19.42%로 올리는 예비판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셰일가스 등의 채굴에 쓰이는 유정용 강관은 국내 소비가 아예 없어 이번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무역 규제까지 받으면 사실상 판로가 사라질 수 있다. 국내산 세탁기 수출액도 8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세탁기 수출액은 1억1860만달러로 전년 대비 456만달러 줄었다. 정점을 찍었던 2009년(3억9240만달러)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8년 연속 수출액이 감소한 결과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세 번의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총 9차례 전화 통화에서 북핵문제 해결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한미 공조를 굳건히 하는 데 노력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세일즈맨답게 한미 무역 불균형 해소를 요구하고 FTA 개정 협상을 꺼내들었다. 이때마다 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공식 답변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8일 청와대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고 한국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미국 세이프가드 조치 해제의 경우 청와대 참모들도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던 것으로 문 대통령이 즉석에서 언급한 것이다.

미국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정용 수입 세탁기 120만대에 20% 관세를 부과하고 초과 물량에는 50% 관세를 물리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지난 7일 발효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달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방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안보 논리와 통상 논리를 구분해서 궤도를 달리 갖고 가겠다는 뜻"이라며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까지 걸려 있는 등 특정 시기에 특정 대통령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미 FTA 법적 체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기에 공개적으로 논의해보자는 취지"라고 전했다. 이어 "국제법에 근거해 검토해보자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 문제를 담보로 잡고 무역을 묶어 통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통상 분리 접근 방식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에서 최근 남북 대화가 한미 동맹 균열을 초래한다는 국내외 일각의 우려 속에서 현실적으로 안보 이슈를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날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미국의 철강 수입 규제 관련 브리핑에서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12개 나라의 철강 수출에만 선별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안보 영향 보고서에서 세 가지 권고안 중 하나로 한국,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12개국에서 수입되는 철강에 대해 5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국가는 2017년 수준으로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철강업계는 세 가지 권고안 중 이 안이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차관보는 "12개국에만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GATT(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21조의 '안보 예외' 조항 적용이 어렵다고 본다"며 "특정 국가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미국 정치권과 수입 철강에 의존하는 미국 산업계 등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아웃리치(접촉)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통하지 않았던 설득이 오는 4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정 전에 극적으로 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강 차관보는 지금까지 설득 노력이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우리 주장을 뒷받침할 통계와 논리를 보강하고, 아웃리치 대상도 과거보다 폭넓고 고위급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을 고율 관세 부과 대상 12개국에 포함한 이유 중 하나로 값싼 중국산 철강을 가공해 미국에 우회 수출한다는 미국 측 시각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재에서 중국산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4%밖에 안 된다는 게 산업부 분석이며, 한국의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수입은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

[고재만 기자 / 강계만 기자 /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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