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만물상] 윤성빈과 '하면 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참 희한한 녀석 다 봤다. 썰매 탄 지 석 달밖에 안 된 고등학생이 대표 선수들보다 낫다." 6년 전 서울 올림픽공원 근처 중국집에서 만난 스켈레톤 국가 대표 출신 강광배 한체대 교수는 혀를 내둘렀다. 서울 신림고 체육교사가 추천한 아이를 테스트해보니 그렇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강 교수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갈 썰매 종목 유망주들을 발굴하던 중이었다. 더구나 그 아이는 일년 내내 썰매는커녕 얼음 구경도 하기 힘든 경남 남해 출신이었다. 그제 설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썰매 분야 금메달 소식을 선물한 윤성빈 얘기다.

▶로이터통신은 "스켈레톤의 황제가 탄생했다"고 했다. AP통신은 "윤성빈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압도했다. 누군가, 언젠가는 그 기록을 능가할 수 있겠지만 그가 우승한 방식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역대 한국이 배출한 올림픽 챔피언 가운데 이만큼 극찬을 들은 선수도 드물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켈레톤은 최고 시속 140㎞대까지 내며 달린다. 하지만 체감 속도는 시속 400㎞가 넘는다고 한다. 머리가 앞을 향하는 데다 두 눈으로 보면서 질주하기 때문에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이런 공포를 윤성빈은 무한 반복되는 훈련으로 이겨냈다. 그는 썰매 속도를 붙이기 위해 하루 8끼 식사를 해 체중을 불렸다. 역도로 다져진 그의 허벅지 둘레는 65㎝로 축구 스타 호날두보다 3㎝ 굵다.

▶비인기 종목인 한국 썰매는 다른 종목에서 선수를 꾸어 와야 할 정도로 영세함을 면치 못했다. '태극 마크 달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유인책으로 육상, 역도, 스키 등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을 불렀다. 윤성빈이 가능성을 보여주자 기업들이 후원에 나섰다. 한국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코칭 스태프만 17명이다. 이 중엔 외국 코치도 7명 있다. 주행·장비·스타트 등 분야별 전문 코치가 달라붙는다. 대표팀은 "스켈레톤처럼 지원한다면 스키든 어떤 종목이든 한국이 정상에 설 수 있다"고 했다.

▶윤성빈의 금메달은 황량한 개펄 위에 세계 최고 제철소와 조선소를 빚어낸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강 교수 주도로 2000년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생길 때 국내 스켈레톤 선수는 그 한 명뿐이었다. 변변한 장비나 코스가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의 '하면 된다' 정신이 연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반가운 쾌거였다.

[민학수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