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이상화, 빙속 500m 은메달
작년 3월 오른쪽 다리 수술… 부상 이겨내고 끝까지 역주
다음 대회 출전 여부 묻자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여운 남겨
고다이라와 찜질방 갈만큼 친해
16조 경기가 끝나고 은메달이 확정된 이상화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대형 태극기를 들었다. 이상화가 태극기와 함께 링크를 도는 동안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이상화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이상화는 금메달을 가져간 고다이라에게 다가갔다. 둘은 오랜 인연을 가진 친구 사이다.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나 친해진 둘은 2007년 고다이라가 한국에 놀러와 함께 찜질방을 갈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자랑했다. 이상화가 서울 대회가 끝나고 곧바로 네덜란드로 가야 하는 고다이라를 위해 공항 가는 택시비를 대신 내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두 시즌 동안 고다이라가 이상화를 매번 앞서면서 둘 사이는 조금 서먹해졌다. 이상화는 고다이라를 말할 때 이름 대신 '그 선수'란 표현을 쓰곤 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 만난 둘은 달랐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힘차게 포옹했다. 고다이라가 먼저 "넌 내가 존경하는 선수"라고 했고, 이상화는 "500m와 1000m를 모두 잘 타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상화는 기자회견장에선 '그 선수' 대신 '나오'라고 이름을 불렀다. 이상화는 경기 후 "결승선을 통과한 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에 눈물이 났다"며 "소치 이후로 금메달을 향해 전진해 왔는데, 그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값진 은메달을 격려해 달라"고 했다.
평창을 준비하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작년 3월 이상화는 선수 생명을 건 모험을 했다. 소치올림픽 전부터 속을 썩이던 오른쪽 다리 수술을 결심한 것이다. 이상화는 오랜 시간 하지정맥류(다리의 혈관이 튀어나오거나 푸르게 비치는 병)로 통증을 겪었다.
수술 직전인 2016~2017시즌엔 제대로 걷기 어려울 만큼 증세가 악화됐다. 세계선수권이나 월드컵에서 한 번도 정상에 서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한 이상화는 다가올 평창올림픽을 위해 수술을 택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회복이 빨랐고, 노력 끝에 평창올림픽에서 은빛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
늘 부상에 시달렸던 이상화는 어린 시절부터 정신력이 남달랐다. 오빠 상준(32)씨를 따라 스케이트를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꼬마는 연습 도중 오른쪽 턱이 날에 베여 11바늘이나 꿰맸지만 꾹 참고 울지 않았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어렵게 한 운동이라 더욱 이를 악물었다.
열한 살 때 아버지 이우근(61)씨로부터 120만원짜리 노란색 선수용 클랩 스케이트(날의 뒷부분이 신발로부터 분리되는 스케이트)를 선물받은 소녀는 "아빠, 훌륭한 선수가 돼서 나중에 호강시켜 드릴게요"라고 편지를 썼다. 최근 그는 경기도 양평의 2층짜리 전원 주택을 부모님께 선물했다.
이상화는 1998년 US오픈 우승 당시 박세리의 사진을 일기장에 오려 붙이고 '나도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며 꿈을 이뤘다. 2013년엔 세계 기록을 네 번이나 갈아치웠고, 이듬해 소치올림픽에서 2연속 금메달을 따며 '빙속의 레전드'가 됐다.
이상화는 평창올림픽을 '우리 집'에서 하는 대회라고 표현했다. 홈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소치 대회 이후 이어진 부상과 고된 훈련을 버텨내게 한 원동력이 됐다. 8000여 팬의 함성 속에 이상화는 시상대에 오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경기 당일인 18일 관중석엔 부모님과 오빠가 와 있었다. 그동안 딸이 부담스러워할까봐 한 번도 경기장을 찾지 않았던 부모님에게 이상화는 "이번엔 꼭 와서 응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상화는 "너무 긴장됐지만 부모님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큰 힘이 됐다"고 했다. 4년 뒤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할 것이냐는 질문엔 미련이 남는다는 표정으로 "재미있는 질문이다. 다음 계획은 잘 모르겠다. 일단 푹 쉬고 싶다"고 말했다.
[강릉=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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