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7 (목)

[한겨레 사설] 어느 현직 여검사의 #미투가 말하는 것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 현직 여성 검사가 검찰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이후 인사 불이익을 겪었다는 주장을 검찰 내부망에 실명으로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이후 성폭력 피해자의 연대를 뜻하는 #미투 캠페인이 전세계로 번져갔지만, 이번 글은 그 무게가 남다르다. 우리 사회 가장 폐쇄적이고 권력서열이 엄격한 검찰 조직 내부에서 나온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는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에서,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가해자는 ‘범우병우 사단’으로 불리며 검찰국장에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물러난 안태근 전 국장이다. 서 검사는 당시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는 걸로 정리했지만, 어떤 사과나 연락도 못 받았고 이후 사무감사, 검찰총장 경고, 전결권 박탈,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으로 이어지는 불이익을 당했다며 관련 문서를 첨부했다. 일련의 상황 뒤에는 안 전 국장과 당시 검찰국장이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안 전 국장은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면서도 인사나 감사에 영향을 끼친 의혹은 부인했는데, ‘권력형 성범죄’의 전형으로 보이는 만큼 조사가 불가피하다. 성범죄 자체도 문제지만, ‘정의 구현’을 내세우는 검찰 조직이 범죄 의혹을 덮고 피해자에게 인사권을 남용했다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검찰 내부 승진·인사 제도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데까지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임은정 검사가 지난해 7월 게시판에 일부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피해 당사자가 직접 나서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일반 직장도 그런데, 하물며 검찰 같은 상명하복 조직에선 성폭력 피해자가 ‘꽃뱀’으로 낙인찍히거나 ‘무능한 검사의 일방적 주장’이라 매도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거대한 조직 앞에서 개인이 체념하면 할수록 변화는 요원한 법이다. 서 검사는 10년 전 한 흑인 여성의 작은 외침이었던 미투 운동이 전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작은 발걸음이라도 된다면 하는 소망으로” 글을 쓴다고 밝혔다. 그리고 29일 한 방송에서 그는 지난 8년간 괴로움과 자책감에 시달렸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그의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