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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듣다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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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0월13일 목포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듣기가 가장 쉽다. 쓰기는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다. 제대로 된 말을 하려 해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나은 읽기도 눈을 뜨고 눈동자를 굴리고 입술을 달싹거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에 비해 듣기는 가만히 있으면 되니 거저먹기다. 눈을 감아도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 듣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듣기’가 문제다. “우리 애가 말을 듣지 않아요.” “이제부터 당신 말은 절대 듣지 않을 거야.” 청력상실? 괴이한 일이다.



말은 무뚝뚝하다. 모든 일을 조근조근 속삭이지 않는다. 실제 일어나는 사건은 귀로 소리를 ‘느끼고’, 소리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고’, 말한 내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느끼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세 단계의 과정을 ‘듣다’ 하나로 퉁칠 수 있다.



나뭇잎을 쓰다듬는 바람 소리를 들어보라고 할 때는 소리를 느끼고 감응하는 단계이다.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는지’를 콕 집어서 물어보는 단계에서는 말을 늘려 ‘내 말 알아듣겠어?’라고 한다. ‘이제부터 말 잘 들을게’라고 할 때는 다르다. 이때는 얌전히 듣기만 하면 안 된다. 행동이 따라야 한다. 다섯살 아이에게 나가서 뛰어놀라고 하는데도 계속 양자역학 책을 읽고 있다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제발 푹 자고 늦게 일어나라고 하는데도 다섯시에 일어나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듣긴 들어도 따르지 않으면, 십중팔구 말한 사람은 서운하고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내 말을 들어 먹지를 않네.’ ‘귓등으로 듣네.’ 한술 더 떠서 ‘귓등으로도 안 듣네!’ 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듣기의 종착지는 말 속에 담긴 기대, 요청, 요구,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약속이자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고집 세고 확고함이 강한 사람일수록 듣기가 가장 어렵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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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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