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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세탁기 다음은 반도체·철강·태양광…트럼프發 무역전쟁 한국기업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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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대통령 취임 1년…더 높아지는 무역장벽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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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한국이 우리 산업을 파괴하며 세탁기를 덤핑하고 있다"고 예상을 웃도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자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업계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권고안에 대한 다음달 2일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혹시나' 했던 일말의 기대감은 이날 발언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는 분위기다. 한국 재계에서는 미국 정부와 업계가 손잡고 더 큰 보호무역 파고가 밀려올 것이라는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세탁기 세이프가드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나온 이후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세탁기 세이프가드는 시작에 불과할 뿐 앞으로 더욱 거친 보호무역정책을 쏟아낼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미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삼성전자·LG전자 등은 내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50%의 보복관세를 담은 ITC 권고안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물론 더 강력한 제3의 조치도 내놓을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삼성전자는 발 빠르게 나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 가전공장을 조기 완공하고 지난 12일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뉴베리 공장의 연간 최대 생산량은 드럼·일반세탁기를 합쳐 약 100만대다. 이는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에 공급하는 물량(140만대 안팎)의 약 66%에 해당한다. 약 60만대로 예상되는 삼성전자의 무관세 쿼터 물량을 감안할 때 뉴베리 공장이 풀가동되면 이론적으로는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공장이 최적화됐을 때를 기준으로 한 산술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풀가동 전까지는 최대 50%의 관세 폭탄을 감수하고 베트남 공장 등에서 세탁기를 들여와야 한다. 특히 ITC는 세탁기 부품에 대해서도 고관세를 매겨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놓은 만큼 주요 부품을 미국 내에서 조달할 때까지 부담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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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는 올해 삼성전자보다 관세 폭탄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염려된다. LG전자 테네시주 몽고메리카운티 세탁기 공장은 일러야 올해 4분기에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ITC 제재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한국산 제품은 제외된 만큼 미국 공급 물량(140만대 안팎) 중 경남 창원 공장에서 생산하는 약 30만대는 현행대로 수출할 수 있다.

문제는 올 4분기 몽고메리 공장을 가동할 때까지 50%의 관세 폭탄이 적용되는 110만대의 태국·베트남 생산 물량을 미국에 들여와야 한다는 점이다. 이 중 60만대 쿼터 물량을 제외하면 50만대가 세율 50% 관세의 직격탄을 맞는다.

송대현 LG전자 사장은 18일 여의도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러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LG전자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국)고객사들에 제품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140만대씩 280만대를 올해 미국 시장에 공급할 경우 120만대의 쿼터 물량을 빼면 삼성전자는 30만대, LG전자는 50만대가량이 고율 관세의 직접 피해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양사가 미국 공장 조기 가동과 함께 주요 부품을 역외 조달이 아닌 미국 현지에서 협력사 네트워크로 조달받는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같은 피해가 내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세이프가드로 인한 원가 부담과 점유율 하락 등이 발생할 경우 잠재적인 손실액은 수천 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문제는 트럼프 정권 출범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강도 높은 보호무역정책이 앞으로 어디까지 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이 자유무역 기조에 맞춰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한 상태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 이를 송두리째 흔들면 공급망 재구축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원가 경쟁력에 치명상을 입는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권의 보호무역 타깃에는 가전뿐 아니라 반도체, 철강, 태양광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모두 사정권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정용 강관과 열연·냉연 강판 등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반덤핑 예비판정을 확정하면서 수입 규제를 강화했다.

여기에 지난 11일 미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하면서 보고 내용에 포스코, 현대제철 등 우리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 제품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경우 수입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산 태양광 패널은 다음달 2일 세탁기 제품에 앞서 오는 26일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예고돼 있다. 이미 "한국·중국산 수입 태양광 패널 및 태양광 전지에 대해 최대 35%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ITC 제재안이 백악관에 제출된 상태다.

업계는 35% 관세가 확정되면 수출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국은 한화큐셀·LG전자·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등이 미국에 태양전지·모듈을 수출하고 있다. 미국 태양광 수출 비중에서 한국은 15.6%로 말레이시아(29.5%), 중국(18%)에 이어 세 번째 위상을 차지한다.

재계에서는 트럼프 정권의 전방위 통상 압박에 정부와 재계가 총력 체제로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국제기구에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한편 미국 정계와 재계, 소비자단체에 보호무역의 부작용을 전방위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적인 통상 압박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일자리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계 고위 임원은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을 선택한 것은 결국 미국 소비자"라며 "세이프가드로 인한 피해는 현지 유통업체와 소비자 부담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LG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점유율이 낮아지면 미국 가전공장 건설도 의미를 잃게 된다"며 "장기적으로는 트럼프 정권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형규 기자 /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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