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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성폭행 예방교육이 해로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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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0교시 페미니즘】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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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은 피해자가 예방할 수 없다. 끔찍한 진실이다. 내 아이를 어떻게 조심시켜도 운이 나쁘면 성폭행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로 이루어지는 성폭행 예방교육은 유용하지 못한 것을 넘어 해롭다.

아이들은 예방교육에서 배운 것들을 지킬 수 없다. 깜깜한 밤에 돌아다니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오후 5시만 되어도 어둑해지는 겨울이 있지 않은가.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돌고 집에 가는 시간이면 이미 어두워져 있다. 학원이며 학습지에 쫓기느라 친구들과 약속 하나 잡기 어려운 아이들이다. 혼자 다녀선 안 된다는 말도 지키기 어렵다.

간단해 보이는 예방수칙은 사실상 지키기 불가능에 가깝다. 실효성도 없다. 어린이 성폭행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인 경우는 35%에 불과하다. 아버지와 절대 단둘이 있어서는 안 된다거나, 동네 어른들에게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가르칠 수 없는 이상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도 65%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범죄가 이미 이루어졌을 때 유일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안 돼요, 싫어요!”는 오히려 범죄자를 겁에 질리게 해 아이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는 임신 위험도 있고, 몸을 많이 다쳤을 수 있으니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는 내 설명에 “성폭행을 당했는데 왜 임신을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많은 아이들, 노골적으로 말해 포르노를 접하기 이전의 아이들이 성폭행에 대해 갖는 생각은 ‘부끄러운 부분을 맞는 것’에 가깝다. 순결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성교육은 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게 막는다.

심지어 교육이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 지킬 수 없는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아이들은 손쉽게 이를 어기고 실효성이 없으니 범죄는 실제로 벌어진다. 피해자가 된 아이들 입을 오히려 지침이 막기도 한다. 아이가 ‘밤늦게 다녔다고 혼날까 봐’ ‘입지 말라는 짧은 옷을 입어 꾸중 들을까 봐’ 성폭행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보호자들 인식도 그렇다.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내 아이는 절대로 피해자가 될 리 없으리란 환상이, 내 아이의 일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비난을 피해자에게 퍼붓게 한다. 피해자 행실을 비난함으로써 내 아이와 피해자 사이의 선을 확고히 하고 그 존재하지도 않는 선이 내 아이를 지켜주리라 믿는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에서 친구에게 맞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행동 수칙을 가르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가? 당연히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하건 폭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 덕분이다. 성폭행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건 성폭력을 당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성폭행의 유일한 원인이 가해자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모두가 이 생각에 동의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 가해자를 키워내지 않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서한솔(서울 상천초등학교 교사,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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