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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범생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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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 아이와 로봇의 일자리 경쟁> 펴낸 이채욱 본부장



한겨레

지난 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채욱 윤선생영어교실 스마트연구본부장이 미래 직업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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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는 은행원이 최고의 직업이었다. 1970~80년대에는 종합무역상사가 일등 직장이었다. 현재 최고 인기 직업인 공무원과 교사는 사실 1997년 외환위기 때까지만 해도 이런 위상이 아니었다.

거의 10년 주기로 인기 직종·직업이 바뀐다. 그런데도 대부분 학생과 학부모들은 현재 인기 있는 직업을 목표로 삼는다. 10년 뒤 직업 위상이 어떻게 변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공무원과 교사가 인기 직업입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지금, 과연 미래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을까요?”

이채욱 윤선생영어교실 스마트연구본부장은 의문을 제기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회적 공감 능력이 중요한 직업은 대체 가능성이 작습니다. 이런 면에서 교사라는 직업은 괜찮지만, 한국은 심각한 출산율 저하로 취학연령대 학생이 급속하게 줄고 있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2년 전 서울대 졸업생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학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 본부장은 “민원서류 발급 등 단순 업무는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사회복지 등 사람의 심리, 상태 등과 관련한 공무원, 새로운 정책을 창조하는 공무원은 더욱더 중요해진다”고 했다. 즉 현재 공무원이 인기 직업인데 미래에도 모든 공무원이 인기 직업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분야와 직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는 얼마 전 <내 아이와 로봇의 일자리 경쟁>(매경출판)을 펴냈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직업에 관해 쓴 책이나 논문 상당수가 외국 사례 연구를 그대로 들여와 한국 현실에 대입한 거여서 구체성이 떨어진다. 이에 비해 이 책은 우리 현실에 맞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봤다.

최근 신문 기사, 책, 논문 등 인공지능 시대 미래 직업 관련해서 나온 글 대부분은 2013년 <고용의 미래>를 펴낸 영국 옥스퍼드대학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 교수의 분석 모형을 활용한 거다. 이들은 702개 직업의 미래 로봇·인공지능 대체 가능성을 조사했다. 콘크리트공, 정육원 및 도축원, 택시운전사, 택배원 등이 대체 가능성이 큰 직업이고, 예술가, 사진가, 공예원 등은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업이다.

그러나 사실 국내 학생과 학부모 가운데 나중에 그런 직업을 택하게 될 수 있지만 지금 콘크리트공 등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대개 사무직을 꿈꾼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현재 한국 학생들이 나중에 되고 싶어 하는 직업은 교사·의사·공무원·과학자 등 20개에 집중돼 있다. 이 본부장은 “예술가가 로봇으로 대체되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예술가의 99%는 배고프게 살고 1% 정도만이 고소득 생활을 한다”고 했다. “이런 걸 고려하지 않고 로봇 대체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예술가를 미래 유망 직업으로 꼽을 수 있나요?”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가 볼 때 중요한 것은, 미래에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 또는 어떤 직업이 뜰까보다는 해당 직업의 직무 내용, 필요한 역량이 어떻게 바뀔까를 보는 것이다.

학생·학부모 ‘현재’ 인기 직업만 관심
10년 뒤 직업별 위상 보는 게 중요
같은 직업군에서도 구체 직무에 따라
주목받는 분야 달라질 수 있어
절차 분명한 일은 기계로 대체 쉬워
4차 산업혁명은 ‘정답이 없는 시대’
1인 3, 4개 문어발 지식·능력 갖춰야



예를 들어 의료분야에서 이제까지는 의사가 가장 인기 있는 고소득 직업이었다. 앞으로는 환자를 오래 상대하고 그들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하는 간호사·간병인 등이 더 유망할 수 있다. 한국적 현실에서 아직 먼 이야기지만 이 본부장은 로봇 시대에 의사와 간호사 권력관계가 거꾸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의사 역시 단지 수술만 잘하는 게 아니라 환자와 가족을 상담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구실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약학의 경우 정밀한 약 조제에는 로봇이 더 뛰어나다. 삼성서울병원은 2015년 의약품 조제 로봇을 도입했다. 인간은 기계만큼 정확하게 함량을 조절하기 힘들다.

사법시험 정원 수가 적었던 시절 변호사는 의뢰인이 알아서 찾아오기에 근엄하게 자리만 지켜도 됐지만, 지금은 영업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코딩 교육이 뜨고 있지만 코딩 자체는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기획자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 어떤 소프트웨어가 필요한지, 어떤 기능을 담아야 하는지 기획자의 계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딩 교육을 강화한다는 정부 의도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지적 능력과 창의성 계발에 있다. 한데 한국 현실에서 자칫하면 코딩 교육도 암기교육, 선행학습으로 전락하기 쉽다.

“알고리즘이란 게 있죠. 어떤 작업의 ‘정해진 절차’입니다. 알고리즘이 단순한 작업 또는 알고리즘화할 수 있는 작업은 컴퓨터로 대체하기 쉬워요. 또 미래에 없어질 만한 직업은 특정 직무만 잘하면 되는 직업인 경우가 많죠. 이런 일은 알고리즘을 짜기 쉽죠.”

프레이와 오즈번 교수도 인간에게 쉬운 일이 기계에 어렵고, 기계에 쉬운 일이 인간에게 어렵다고 주목했다. 예를 들어, 기사를 쓴다고 하면 스포츠 경기 결과, 환율이나 주가의 변동 등은 로봇이 훨씬 빨리 작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깊이 있는 기사는 로봇이 작성하기 힘들다. 이 본부장은 “기자라는 직업의 대체 가능성이 11%라 하면, 이는 기자의 업무 역량 100개 가운데 11개는 기계로 대체된다고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학생들은 영어 공부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자동번역기가 등장하면 단순한 영어 듣기·청취 능력은 별 경쟁력이 없다. 영어로 된 데이터·콘텐츠에서 뭐가 의미가 있는 건지 추론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리터러시(문해력) 능력이 강조된다.

이제까지는 한 가지만 특별하게 잘하면 된다는 게 유효했지만 미래 사회에서는 1인이 3가지, 4가지 여러 분야에 걸친 지식과 융복합 지식이 중요하다는 게 이 본부장의 생각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정해진 절차, 부모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 하는 ‘범생이’는 되레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한국 부모들은 튀는 애로 절대 안 키우려고 하죠. 한데 표준화된 애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힘들어요. 한 사람이 문어발 지식과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한쪽에만 ‘몰빵’하면 위험합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유발 하라리 교수도 <호모데우스>에서 한 가지 기술에만 숙달하면 되는 택시운전사, 심장전문의보다 수십 가지 기술을 갖춰야 생존이 가능했던 수렵채집인이 로봇으로 대체되기 엄청나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3차 산업혁명 때까지는 정답이 있는 시대였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정답이 없는 시대입니다.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얘기 나오니까 우선 코딩 교육하고, ‘정답 직업’은 로봇공학자, 나노생명과학자 이런 식으로 몰려가는 게 문제죠. 앞으로 평생 기본소득 받고 살 수도 있는데 애들이 무조건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를 꿈꾸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사실 경쟁력도 없습니다.”

글·사진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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