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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신준환의 꿈꾸는 나무](10)이 세계를 지탱하는 건 한숨 바람에도 흔들리는 식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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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보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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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우리 삶의 기반을 지탱해주고 있다. 식물은 우리의 의식주에 필요한 재료이자 건강한 삶과 풍요로운 문화의 원천이 될 뿐 아니라 맑은 물과 쾌적한 공기를 제공하고 기후를 조절하여 우리의 환경도 지켜준다. 더구나 우리의 생물학적 진화도 식물과 함께하였고, 밝음을 지향하는 영성의 발현도 식물과 공명하고 있다. 이렇듯 인류의 조상은 식물의 도움을 받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였고, 현생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며 문명을 일구었으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생태계를 급속히 변화시켜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지난 역사라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포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박테리아의 대사과정에도 우주의 역사가 숨쉬고 있고, 이런 박테리아는 우리 장 속에서 식물성 섬유조직을 받아먹으며 활력을 일으켜 우리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제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생태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밀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생명은 서로 속속들이 한통속이다.

미생물이 주도하는, 그래서 더 깊숙이 더 촘촘하게 이어지는 생태계의 물질순환, 태양이 추진하는 에너지 흐름과 수분 순환 그리고 밤낮과 계절에 따라 진동하는 온갖 생물들의 아름다운 시간적 동조. 이렇게 순환으로 연결되고 동조로 공명하며 우리 마음을 진동하게 만드는 생물다양성의 바탕에는 녹색식물의 싱그러움이 있다. 더구나 식물은 저 밖에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와 들숨과 날숨을 이어받으며 서로 호흡을 나누는 이웃이다.

생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고 서로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은 서로 의존하면서 서로를 이어내며 새로운 세계를 창출한다. 민들레 홀씨를 보자. 생명이란 혼자서는 티끌처럼 날려 다니지만 서로 연결되면 새싹을 내고 땅도 뚫고 올라오는 놀라운 존재이다. 나무가 저렇게 자유로운 몸짓으로 춤추듯이 자라고 있는 것은 나무가 온실의 화초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사소한 행동도 모두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도 단순히 생태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행동거지에 따라 생태계에 짐이 될 수도 있지만 생태계를 이어주는 숭고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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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대단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세상에서 모든 관계가 다 끊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서 괴로워하는 경우에도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이처럼 생태계와 우주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지탱하는 대지, 나의 눈빛을 받아주는 하늘, 나의 숨결을 이어주는 수많은 생명들. 원초적 고향이란 이런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외로운 산꼭대기 바위틈에 피어나 바람에 시달리는 저 구절초조차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꽃을 피우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는가? 식물은 이렇게 우리를 행복의 길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사실 고통과 기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한 생명력의 두 리듬일 뿐이다. 아기 탄생의 울음은 고통과 기쁨이 갈라지기 전의 힘찬 생명력을 보여준다. 식물은 한 생명의 탄생에서 고통과 기쁨이라는 두 가지 색깔로 번지는 세계를 보여준다.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고통과 환희의 초록 빛깔 몸짓을 보라.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있는 저 꽃의 떨림을 보라.

우리는 작은 풀꽃을 보고서도 왜 이리 감동하는가? 그것은 굳은살이 터질 때에야 아픔을 느끼듯이 저 작은 꽃이 그동안 잊어버리고 지나온 세월, 무심히 쌓인 세월, 굳은 세월에 틈을 내고 생명의 진동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흔히 지나쳐보던 이 지구, 저 우주가 모두 나의 생각에서 굳은 대상이라면 이 풀꽃은 나의 생명을 깨워 나의 우주로 안내하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40억년 동안의 진화를 통하여 지구를 아름답게 꾸며 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눈을 빛나게 하는 생명이 우리를 우주 깊숙이 연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내던져진 존재도, 끌려다니는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세계를 이어주고 세계를 일으켜 세우는 존재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고 있지만 우주의 모든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모두 연결되어 있는 우주는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의 우주가 되지만 저 조그마한 식물을 통해서도 하나의 우주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뭘 안다고 으스댈 일은 아니다.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많은 것을 배제하는 과정이고 지식의 성을 견고하게 쌓아 나를 가두어 놓는 과정이다. 정말 두려운 일은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다는 것의 높이가 아니라 모른다는 것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우리의 의식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우주일 뿐 우리가 모르고 있는 깊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진정한 우주의 크기다.

우리는 식물을 흙에서 캐낼 수는 있지만 식물의 뿌리를 흙과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땅과 떨어져 걸어 다닌다고 지구 생태계와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인류의 장기인 분석적인 사고로는 자연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간밤에 폭설이 내린 후 한바탕 눈축제를 기대하며 숲에 가는 길에 먼저 놀란다. 우리는 갈퀴처럼 쓸고 간 바람의 뒷자리가 어떻게 부드러운 양탄자보다 매끈한 표면을 남겨두었는지 분석해서 알아낼 능력이 없다. 바람의 채찍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린 눈으로 나무마다 떡가래처럼 쭉 빠진 길을 다시 하늘로 내놓았는지 그저 놀랄 뿐이다. 겨울 아침 얼어붙은 공기를 깨는 아이의 웃음소리같이 번져 있는 눈보라의 숨결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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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는 식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아직 식물의 세계는 우리에게 제대로 발견되지 않았다. 식물은 늘 우리의 선입관을 뚫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식물은 단순히 자연만이 아니다. 식물과 우리는 삶의 도를 뚫어내는 길에 진화적 규모의 도반이었기에 우리가 오래전부터 꿈꾸어 와서 아주 오래 압축적으로 추상된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의 저 자유스러운 몸짓은 자연에서 자라난 것이지만 인간의 혼이 벼려낸 추상에서 빚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무는 바로 우리의 꿈이다.

나무의 모습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자연과정으로 맺어진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몸짓으로 춤을 춘다. 우리는 식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우리가 식물인간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식물은 매우 역동적이다. 해마다 새로운 세계를 펼쳐내는 나무를 보자. 특히 저토록 거대한 덩치가 하늘을 향한 무너질 수 없는 몸짓을 펼치는 것을 보면 숭고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단순히 과학적인 판단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이 중추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이 죽은 식물도 우리 마음에는 살아 있는 이유이다. 가을에 말라붙은 풀잎은 겨울비를 맞고서도 우리를 황홀한 세계로 안내하며 창공에 걸려 있는 고사목은 얼어붙은 마음에도 숭고한 영혼의 자유를 일깨워준다. 좀 아는 사람은 죽은 풀과 고사목은 없애도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좀 더 아는 사람은 죽은 풀이 겨울 생물에게는 무척 고마운 존재이며, 고사목이 어떤 생물에겐 우주의 자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생물다양성은 그냥 아름답게 우글거리는 모임만은 아니다. 서로 의존하고 살아가며 관계를 맺어내는 생태계로, 그 자체가 늘 변하며 생물이 더 다양한 삶의 자리를 열어내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점점 더 복잡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하나의 세계이다. 사실 이 세계는 아름다운 만큼 부서지기 쉽고 복잡한 만큼 변하기 쉬운데 우리는 무한정 지탱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줄 착각하고 마구 훼손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의 놀라운 정도가 묽어지고 복잡성의 깊이도 얇아지고 있다.

신화에서는 튼튼한 코끼리나 거북이 이 세계를 버티고 있다지만 사실은 한숨 바람에도 흔들리는 식물이 우리의 세계를 지탱해주고 있다. 우리가 식물의 이런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식물의 생명력은 매우 약해 보이는 동시에 매우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듯이 식물의 이런 특성은 진실이다. 우리가 숲에 돌아다녀보면 어떨 때는 폭발적으로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왕성하게 자라던 식물이 어떨 때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위축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것일수록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변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변화가 두려워 얼려두듯이 그대로 보존하고 싶겠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 소중한 것을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가 쉽게 자연을 닮아 지속가능하게 살자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사실 자연은 지속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 태양이나 지구가 변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한 생물 종이 변하지 않고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는가? 자연은 늘 변하고 있고 변해 갈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이렇게 변해가는 속성을 지닌 자연과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지속가능성이란 관계의 속성이지 대상의 속성이 아니다.

관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런데 신뢰란 인간의 개념이니 우리가 식물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식물에게 신뢰를 받는 길은 무엇일까? 우선 식물과 우리는 생태계를 바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생태계 차원의 신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나무를 베어내고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면서 환경을 보호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그들은 지구온난화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나무도 태양광을 가지고 에너지를 합성해준다. 그들은 자연적인 나무보다 인공적인 태양광 발전 시설의 효율이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적으로는 나무의 광합성 과정이 인간의 어떤 기술보다 높은 에너지 효율을 가지고 있다(<생명, 경계에 서다>, 글항아리사이언스).

나무가 태양광 시설보다 에너지 효율이 낮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나무는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많은 생명을 키우고, 보이지 않는 많은 일을 하며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는 우리가 나무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더구나 주차장에 만들면 한여름의 차량 과열도 막고 도시 열섬현상도 완화시켜줄 텐데 주차장에는 별로 설치하지 않고 굳이 산을 깎아서 설치하는 것을 보면 에너지 효율보다는 정부 보조나 산지를 다른 용도로 전환시켜 이득을 보려는 편법으로 오해를 받기 쉽다. 이렇게 인간 사회에서도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태로는 나무의 신뢰를 얻기가 요원할 것이다.

많은 나무를 베어 넘기고 넓은 터를 닦아 겨우 한 가족이 살아갈 큰 집을 지어놓고 생태를 고려한 에코하우스(eco-house)라는 이름을 붙이는 서양인들도 이해가 되지 않고, 너른 터에 혼자 살아가며 자연인이라고 외치는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인구가 모두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 산하를 몇 번이나 찢어발겨야 할까? 이런 식으로는 식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잔잔한 수면에 비친 호숫가의 풀처럼 우리도 식물에 아름답게 비치기를 꿈꿔 볼 수는 없을까? 아이는 신뢰란 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존중하며 진정으로 이해할 때 아이도 신뢰의 몸짓을 보여준다. 식물을 존중하는 길만이 식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이다. 식물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식물은 우리 생명을 지켜주고 후손들이 살아갈 환경도 지켜주는 존재이다. 이렇듯 우리에게 행복의 의미를 알려주고 지속가능하게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도 알려주는 식물을 보호하는 일은 식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공존을 위한 것이다. <시리즈 끝>

▶필자 신준환

경향신문

전통 생태 지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산림생태, 생물다양성 보전 등을 연구하고 있다. <다시, 나무를 보다>, 어린이 그림책 <나무는 언제나 좋아> 등을 출간했다. 국립수목원장을 지냈다. 동양대학교 초빙교수다.


<신준환 | 동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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