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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일본 대학생들, ‘조선인 전범 이학래’ 다큐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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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호세이대 8명 ‘92살 이씨’ 인터뷰

‘일제때 포로감시원 동원’ 옥살이

전후 일본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해

14일 도쿄에서 상영 모임도 열어



한겨레

한국인 비시(BC)급 전범 피해자 이학래 동진회 회장.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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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생들이 일제시대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한국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5일 전했다.

호세이대학 국제문화부 스즈키 야스시 교수가 지도하는 3학년 학생 8명은 ‘전후 보상에 숨겨진 부조리-한국인 전 비시(BC)급 전범의 싸움’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지난 14일 도쿄 이다바시에서 상영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학생들은 학교 세미나 테마로 한국인 비시급 전범 피해자 문제를 다루기로 한 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진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올해 92살 이학래씨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씨는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국은 2차 대전 뒤 독일과 일본의 전쟁범죄자를 ‘A·B·C’ 세등급으로 분류했는데, 이중 A급은 침략전쟁을 기획하고 시작 또는 수행한 사람들이었다. B급과 C급은 포로학대, 약탈 등을 저지른 사람들이나 상급자의 명령에 의하여 고문과 살인을 한 사람이 대상이었다. 문제는 태평양전쟁 당시 상당수 조선인들이 일본에 의해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후 연합국 국제재판소에서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중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일본군 군속으로 동원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군의 명령을 전달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포로 학대라는 죄를 덮어쓰는 사례가 많았다. 일본은 전후 군인과 군속을 지원하는 법률을 만들었으나,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전후 더 이상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이씨도 17살에 포로감시원으로 타이 철도 건설 현장으로 파견됐고, 전후 사형 판결을 받았다. 다행히 이후 감형됐지만 동료 중에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도 많았다. 이씨는 다큐를 찍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에게 “숨진 동료들의 원통함을 풀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시급 전범이라는 단어 자체를 최근까지 알지 못했던 학생들은 “동료를 위해서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씨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고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 학생은 “솔직히 일본인은 언제까지나 사죄를 계속해야만 하나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눈을 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다큐는 “(이씨와) 함께 활동을 계속해 온 동료도 이제 3명 남았다. 조기 해결이 요구되는 문제에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게 마주해야 할 것인가”라는 나레이션으로 끝난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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