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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무겁게 가라앉은 국정원…“코끼리급 경찰을 공룡급으로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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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곡동에 자리한 국가정보원은 15일 짙게 내려앉은 미세먼지만큼이나 분위기가 칙칙하고 무거웠다고 한다. 전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발표한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등 국정원 개혁 방안을 받아들고난 뒤다. 국정원 직원들은 예견됐던 사안이긴 했지만 청와대 발표로 현실화하자 “올 것이 왔다”는 반응 속에 공을 넘겨받게 될 국회 논의 등을 전망하며 삼삼오오 대화를 나눴다.

익명을 원한 국정원 고위간부 출신 A씨는 이날 통화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드러내놓고 속내를 표하지는 않고 있지만 내심 불만이 많다. 말은 못하고 끙끙 앓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특히 “‘경찰을 너무 키우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개혁안에 따르면 경찰은 국정원이 해오던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아 이를 지휘하는 안보수사처를 신설하고, 검찰의 일반 수사권도 함께 넘겨받게 된다. A씨는 “경찰이 대공수사권까지 가지면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생긴다”며 “코끼리급이던 경찰이 공룡급으로 비대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는 경찰이 대공수사를 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상당하다고 한다. 수사에선 경찰보다 전문적이고 우월하다는 국정원 특유의 엘리트 의식도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또 다른 국정원 고위간부 출신 인사 B씨는 “과거 경찰청장(치안총감)으로 있던 인사가 국정원 차장으로 왔는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치안정감(경찰청 차장급)이 국정원 차장 부임을 하니까 못마땅해 하는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다 보니 경찰 고위직 출신 중에 국정원에 부임 와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상업 전 경찰대학장, 한진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정원 2차장에 부임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서천호 전 경찰대학장이 국정원 2차장에 임명됐었다.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면 사실상 그 기능이 무력화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 C씨는 "30년 정보기관에 있으면서 간첩 한명 잡으면 영광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며 "짧게는 10년, 길게는 20~30년 북한의 전략과 움직임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처럼 단순 수사기관이 이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특히 행동의 기준을 합법성에 두는 검찰과 경찰과 합목적성에 두는 국정원은 차이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전술·전략을 알아야 하는 대공수사를 경찰에 맡긴다면 그 기능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정원 1차장 출신의 전옥현 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도 “북한의 대남 공작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ㆍ지능화 되고 있는데 (대공)수사와 정보를 함께 갖춰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국제 추세와는 반대로 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대공수사는 실험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국 인력이 경찰 내 안보수사처로 옮겨가게 되면 국정원ㆍ경찰 기관 간 직급 불일치라는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조정하느냐도 쟁점이다. 현재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은 1급으로 경찰에서 1급은 경찰청장 다음 ‘넘버2’인 경찰청 차장(치안정감) 직위에 해당된다. 전직 국정원 정보 요원 출신인 D씨는 “국정원 대공수사국에 소속된 수많은 직원들이 경찰로 옮겨가면 경찰 직급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텐데 이런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발표부터 하고 본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선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 이번 개혁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처리되긴 어려울 거라는 관측도 많이 나온다고 한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국회 한 관계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는 달리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대공수사권 이관에 강하게 반대하고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도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란 기대 심리가 국정원 내에 일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개편안을 “과거 국정원이 한 잘못의 대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고 한다. 국정원 간부 출신 B씨는 “20대와 30대 일부 젊은 직원들은 ‘대공수사권을 떼어내면 차라리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김형구ㆍ김준영ㆍ송승환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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