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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매경포럼] 시장실패보다 무서운 정부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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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요즘 기업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빠지지 않고 대화 테이블에 오른다. 이들은 최저임금이 단번에 16.4% 올라버린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기업이나 가게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것인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체인 식당을 운영하는 한 CEO는 직원들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골몰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점심 후 저녁 손님이 찾을 때까지 휴식을 근무시간에 포함시켰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근무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한 중소기업 오너는 올해는 신입사원을 안 뽑고 경력사원으로 충원할까 생각 중이다. 신입은 교육훈련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임금까지 대폭 올렸다가는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총 3조원, 1인당 13만원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활용하면 되지 않냐고 주장한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보험료 90%를 보조해준다고 해도 사업자든 개인이든 4대 보험 가입을 꺼리는 판에 무슨 소용이냐고 항변해도 들은 체도 안 한다.

서울 강남 아파트값 상승도 단골 소재다. 그런데 누구 하나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정부 정책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정부 대책이라는 게 대략 이런 거다. 아파트가 여러 채 있으면 양도소득세를 중과할 테니 빨리 팔아라. 보유세 세율을 올릴 예정이니 괜히 더 집 살 생각하지 말아라. 재건축 이익은 일정 부분을 환수할 테니 재건축에 관심 갖지 말아라.

그러나 사람들은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차라리 다른 데를 팔고서 강남 아파트 한 채를 가지려 한다. 종부세를 도입했던 노무현정부 때 집값이 더 오르지 않았냐고 맞받아친다. 재건축 초과이익을 환수하면 그 금액만큼 집값이 더 올라가지 않겠나 생각한다. 강남아파트 값이 오르는 이유를 다 아는데 정부만 모른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대화가 부쩍 늘었다. 떼돈 번 사람 얘기가 단연 화제다. 초기에 투자한 비트코인을 지금껏 갖고 있다가 자산이 200억원대로 불었다는 사람도 있고, 환전거래소를 운영하면서 현금 대신 비트코인을 받은 것이 자투리 시세차익을 내 어느덧 100억원대를 모았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스토리가 가상화폐거래소로 사람들을 유인해 어느덧 300만명까지 모여들었다. 정부가 거래소 폐쇄를 언급하자 이들이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지방선거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청와대가 설익은 발표임을 인정하고 정부가 "충분한 의견 조율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물러선 뒤에야 시장은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핫 이슈에 대한 정부 대응이 '헛다리 짚기'로 결론 나고 있는 것은 병인(病因)에 대한 처방 없이 대증 요법으로 치료하겠다고 달려든 탓이다.

강남 부동산이나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근본 원인은 오랜 저금리로 시중에 유동성이 과하게 풀렸기 때문이다. 막대한 돈이 흘러갈 곳이 없으니 사람들은 희소한 강남 아파트에 베팅하는 것이다. 부동자금이 코스닥에서 비트코인으로 옮겨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논란은 핵심 이해관계자인 임금 부담자들 얘기에 귀를 막은 것이 패착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넘치는 유동성을 어떻게 하면 산업자본으로 흘러 들어가게 할 것인지 궁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지역에 어떻게 하면 집을 더 지을 수 있을 것인지도 고심해야 한다. 비트코인 투자가 도박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다각도로 찾아봐야 한다. 거래를 무조건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선물(先物)을 도입해 헤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좋은 대책이 될 수도 있다. 최저임금은 "속도를 조절하겠다"고만 해도 부작용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실패는 늘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정부는 적절히 개입해 시장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치적 '의도'를 밀어붙이면 시장실패가 정부실패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실패는 후유증이 시장실패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섭다는 게 문제다.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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