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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블랙리스트' 업무 담당 직원 "이걸 왜 해야 하나…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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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이걸 왜 해야 하나.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이른바 ‘블랙리스트’) 업무를 맡았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 김모씨의 12일 법정 증언이다. 그의 눈물 섞인 증언은 블랙리스트 업무를 맡으며 느낀 ‘인간적 수치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김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문화융성’ 정책을 표방했던 지난 정부의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이날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씨는 블랙리스트 업무를 맡으며 느꼈던 자괴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원래 대관·공연사업 업무를 담당했던 김씨는 문체부가 내려보낸 ‘블랙리스트’ 속 극단이나 문화예술 단체 등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을 끊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몸담은 한국문화예술위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책입안자로 참여시켜 문화·예술 발전을 도모하려고 설립된 단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추구하겠다던 ‘문화융성’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정작 박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한국문화예술위는 정부 비판적인 인사들의 창작 활동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일보

김씨는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조직 내에서 ‘잘못된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법정에서 “모든 일이 드러났을 때 부끄럽고 창피한 상황이니 빨리 인정하자고 말했지만 이후 부장 자리에서 강등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도 왜 이렇게 지난 3년 동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면서 “20년간 몸담은 현장에서 나를 ‘부역자’라고 손가락질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꼭 물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작 ‘국정농단’ 사건의 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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