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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공격력에 대한 맹신과 환상은 실패 부르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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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화성-15’형 발사 이후



한겨레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1개월 내에 북한 전역을 제압할 수 있는 ‘공세적 종심작전’으로 우리 군사전략을 대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출했다. 사진은 송 장관(가운데)이 5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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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이 두 달여 남은 시점에서 북한이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지형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자제한 것은 전략적 후퇴나 대화를 위한 냉각기간이 아니라, 미국 전역을 타격하는 미사일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최종 준비기간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또다시 북한에 대해 오판을 했다. 지난 8월과 9월 북한의 연이은 ‘화성-12’, ‘화성-14’형 미사일 발사를 유심히 지켜본 미국은 북한이 탄두 중량을 가볍게 해 실제 능력보다 사거리를 대폭 늘린 것처럼 미국을 기만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짐짓 여유까지 부렸다. 미 정보당국의 분석가들은 9월에 발사된 북한의 화성-14형도 북한 주장대로 8000~1만㎞ 사거리의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실제 탄두를 장착할 경우 6000㎞에 겨우 도달하는 중장거리 미사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봤다. 만일 이 정도라면 하와이는 북한 미사일의 타격 범위에 포함되지만, 북한 미사일의 낮은 정밀도를 고려할 때 섬을 정확히 타격할 가능성은 낮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9월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 전역 타격 능력을 미국에 과시하는 데 실패했다”며 “이후 북한의 모든 전략목표는 어떻게 미국 타격 능력을 입증하는가에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두 달 넘게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로켓 기술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기술론, “북한이 찬 겨울에는 주로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는 날씨론,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모색할 것이다”라는 협상론 등의 관측이 난무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특별한 정치적 메시지가 없는 추가 미사일 발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으로 이어졌고, 일부는 이런 소강상태가 북한에는 국제 제재의 압력을 완화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도모할 호기로 인식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지난 11월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을 찾은 스웨덴 안보개발연구소(ISDP) 관계자들은 필자에게 “북한이 12월경 추가 미사일 발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과 제재도 북한의 전략적 의도를 좌절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미국 타격 능력을 완성함으로써 추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굳히겠다는 집착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불변이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이 설명에 대해 필자도 의문을 표시했다. 설령 북한의 의도가 그러하다 해도 과연 어떤 방법으로 새로운 능력을 과시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서다. 아마도 화성-14형 미사일을 고각이 아닌 정상 각도로 발사해 미국 타격 능력을 어렴풋이 암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라는 정도였다.

지난달 29일 북 ‘화성-15’형 발사 이후
한-미 사상 최대 군사훈련으로 대응
송 국방, ‘공세적 종심작전’ 대전환 의지
‘대량 응징’ 쪽으로 국방계획 수정 뜻

군사력은 공격력과 방어력 균형 속에
합리적 최적모델 찾는 데 맞춰져야
“3주 만에 승리” 호언한 럼스펠드 실패
새로운 평화 프로세스 제시 절실


사상 최대 군사훈련과 공격 우위 신봉자들

그러나 필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 11월29일 새벽 북한은 화성-15형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즉각 성공 사실을 발표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전한 북한 당국의 성명은 “김정은 동지는 새 형의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의 성공적 발사를 지켜보시면서 오늘 비로소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긍지 높이 선포했다”였다. 이어 성명은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무기체계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으로 “지난 7월에 시험 발사한 화성-14형보다 전술 기술적 제원과 기술적 특성이 훨씬 우월한 무기체계”라고 주장했다. 두 개의 백두산 엔진을 장착하고 연료 탑재량을 증가시켜 전체적으로 미사일의 크기를 늘림으로써 그토록 북한이 집착하는 1만3000㎞ 타격 범위, 즉 ‘미국 전역’이라는 북한식 전쟁 개념의 완결판처럼 느껴진다.

이에 대해 이제 한·미 전문가들은 씁쓸하게 그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우리 국방부는 물론 미국 정부도 미사일의 형상과 크기, 탑재 차량까지 고려할 때 이는 완전히 새로운 미사일이고, 미국 타격의 가능성은 “이제 구체적인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영근 교수는 “아무리 구소련의 로켓 엔진을 복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북한의 미사일 능력은 우리보다 확실히 뛰어나다”고 말한다. 미국은 즉각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을 중국에 촉구하고 한·미·일의 북한 해상 차단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화성-15형의 발사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그간의 의구심을 일소하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데 사실상 성공했다. 이렇게 보면 군사적 압박은 북한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외려 미국에 가해지는 형국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한층 끌어올린다고 하지만, 거꾸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쪽은 미국이 될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는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군용기 240여대가 동원되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공중연합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엔 주한 미 7공군뿐만 아니라 주일 미 5공군 항공기까지 대거 투입됐다. 여기에 참여하는 F-22 6대와 F-35A는 북한 전역의 핵심 표적에 대한 동시타격 능력을 시험했다. 그간 7공군사령부가 주축이 되어 운용하는 유사시 북한 타격을 위한 항공임무계획(pre-ATO)과 달리, 최근 한·미가 새로 수립한 새로운 타격계획(set-ATO)은 미국 전략자산의 추가 투입을 통해 북한 전후방의 표적을 한꺼번에 타격해 단시간 내에 북한을 제압하는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정밀 타격으로 북한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군사력을 마비시킨다 하더라도, 한·미의 북한 공격은 북한 군대 110만명의 절반 이상을 몰살시키는 21세기 최고·최대 규모의 대량 화력전이다. 이 지구상에 이렇게 많은 화력이 동원되는 전쟁계획을 수립하는 곳은 오직 한반도밖에 없다. 미사일방어(MD)와 같은 소극적 방어 개념으로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없다면 대규모 공세 전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장관 한마디에 군사계획 ‘대혼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역시 한달 안에 북한 전역을 제압할 수 있는 ‘공세적 종심작전’으로 우리 군사전략을 대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출한 상황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조차 “장관의 의지가 너무나 강해서 기존 국방계획을 무리하게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국방부 분위기를 전한다. 기존의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와 같은 소극적 안보 개념에서 추진되는 각종 사업을 미루거나 백지화하는 대신, 북한에 대한 대량응징(KMPR) 능력을 갖추는 쪽으로 국방계획을 수정하겠다는 의미다. 워낙 그 전환이 급박하고 파격적인 것이어서 수시로 산하 기관장이나 참모들과 설전을 벌이는 송 장관의 발언은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서릿발이 선다. 북한이 남한 타격용으로 보유한 약 600여기의 스커드 계열 미사일을 방어하는 한국형 요격미사일(M-SAM)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방어무기”라며 사업을 중단시키고 그 재원을 공격무기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까지 우리 군사계획은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도모하는 데 맞춰져 왔다. 한반도 안보에서 공격이 중요하냐 방어가 중요하냐는 마치 직사각형 면적을 구하는 데 가로가 중요하냐 세로가 중요하냐는 것처럼 이상한 논쟁이다. 공격을 가하면서도 그것이 완벽하지만 않다면 2500만명이 거주하는 수도권 주민의 안전을 방어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이 때문에 군사력이란 모름지기 공격력과 방어력을 균형 있게 보유하면서 우리 능력에 맞는 합리적인 최적의 모델을 찾아내는 데 맞춰져야 한다. 얻어맞을 때는 무방비로 얻어맞으면서 오직 때리기만 하겠다는 공격 우위에 대한 과도한 신념은, 다분히 한반도 안보에 대한 절박성과 한국형 억지력의 부실함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만하다. 이해는 가되 동의할 수는 없는 신념이다. 이렇게 공격을 신봉하다가 실제 전쟁에서 실패하는 무수한 군사지도자의 사례를 우리는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럽의 군사지도자들은 오직 공격 우위 신봉자들이었다. 독일의 슐리펜 계획, 프랑스의 작전계획 17호가 그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 미국의 군사지도자는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손쉽게 전쟁에서 이기리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 결과는 전쟁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는 대규모 참극으로 이어졌다.

21세기에도 그러한 착각은 계속 이어졌다. 2003년 당시 미국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라크에서 “단 3주 만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라크는 안정화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군사적 성공은 군사력에 대한 지식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도 일종의 문화다. 상대방의 의지와 전략문화, 국가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 내가 가진 군사력만 제대로 안다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이런 착각에서 북한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레드라인으로 설정된 내년 3월

대규모 공격력으로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환상은 모든 침략과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모든 전쟁의 가장 큰 비극은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와 유혹, 그리고 착각에서 비롯됐다. 천연의 요새나 다름없는 북한, 군사적 압박이 통하지 않는 이 기이한 나라에 대해 우리는 전쟁의 문제를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국방부의 군사계획 수정과 북한 정권을 겨냥한 참수부대 창설, 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은 평창올림픽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하면서 “6개월 내에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을 준비하라”고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지시한 레드라인(금지선)을 설정한 마지막 시점이 내년 3월이다. 군사적 옵션을 실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할 시점은 꽃샘추위가 시작되는 내년 초로 설정돼 있다고 해도, 최근의 안보 상황은 그 시기를 더욱 앞당기도록 독촉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2월은 자칫 평화올림픽이 아니라 군사올림픽, 전쟁올림픽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올림픽, 패럴림픽의 평화적 개최를 위해 내년 한-미 군사연습도 대폭 축소하자는 제안을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러시아가 최근 한-미 군사연습 중단과 북한 핵을 동결하자는 ‘쌍중단’을 새로운 대화 의제로 제기하면서 중재 외교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런데 막상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이에 대한 한-미의 군사적 응전으로, 위기는 평창올림픽 전이나 또는 그 중간에 올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안보의 당사자로서 우리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충돌 조짐에 대책 없이 끌려갈 수만은 없다. 새로운 평화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제시하면서, 대통령은 언제 누구와 어떤 의제로도 만날 수 있다는 적극적 평화 행보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 때를 놓치면 미래가 없다는 인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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