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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늪처럼 변한 땅… 포항 '피사의 아파트' 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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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액상화' 의심 현상… 진앙 2㎞반경서 100여곳 발견]

땅 뚫고 지하수·모래 등 분출… 지반 물러져 건물 붕괴 등 유발

사실 땐 내진설계 넘는 대책 필요

동일본 지진땐 수도권까지 여파… 도쿄 디즈니랜드 한달간 문닫아

일본, 전국 액상화 지도 만들어

부산대 연구팀이 "포항 지진의 진앙 주변에서 물과 진흙이 땅 위로 솟구쳐 오른 현상이 지진에 의한 액상화(液狀化)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액상화는 지진 이후 지반이 지속적으로 흔들리면서 지하수와 흙이 섞여 지반을 약화시키는 현상이다. 강변이나 해안 등 퇴적층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액상화가 도심에서 발생하면 건물 붕괴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선 이 현상으로 건물이 쓰러지고 기우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상청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부산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를 공유하고, 진앙 부근 단층에 대한 시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행정안전부에서 모든 자료를 종합해 액상화 여부를 공식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 지진 때 건물이 기울어진 현상의 원인이 액상화로 밝혀질 경우 차원이 다른 대책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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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포항 지진의 진앙 주변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논밭에서 부산대 연구팀이 물과 진흙이 땅 위로 솟구치는 액상화(液狀化) 현상을 조사하고 있다. 액상화 현상이 도심에서 발생하면 건물이 쓰러져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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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등은 민관 합동 조사를 통해 진앙에서 2㎞ 떨어진 곳에 짓고 있는 지열발전소가 이번 액상화 현상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물이 끓는 듯 솟아올라"

손문 부산대 교수 연구팀은 19일 "포항 진앙 주변 2㎞ 반경에서 흙탕물이 분출된 흔적 100여곳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진 발생 당시 "논밭에서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솟아올랐다"는 현지 주민 증언도 확보했다. 부산대 연구팀은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정부 의뢰로 국내 활성단층 지도 제작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연구팀은 "액상화가 발생하면 지표면 위 건물이 일시적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상태가 된다"면서 "아파트가 기우는 등 진앙 근처 건물이 액상화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질연 현장조사팀도 지난 18일 진앙 근처에서 액상화 현상 때 나타나는 '샌드 볼케이노(모래 분출구)'와 '머드 볼케이노(진흙 분출구)' 30여개를 확인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액상화 현상이 공식 관측된 기록은 없다.

일본선 광범위하게 발생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진앙과 가까운 도호쿠(東北) 지방만 피해를 본 게 아니었다. 진원에서 수백㎞ 떨어진 수도권 지바현 우라야스(浦安)시에서도 연립주택이 기울어지고 도로가 함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라야스시의 명물인 도쿄디즈니랜드도 한 달간 문을 닫아야 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당시 건물이 기울거나 무너지고 도로가 함몰되는 사태가 일본 9개 광역단체에서 2만6914건 넘게 일어났다고 집계했다. 조사 결과 '액상화 현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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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처음으로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 건 1964년 니가타 지진 때였다. 당시 니가타현에서는 시나노 강가와 니가타 공항 지반에 액상화 현상이 나타나 곳곳에서 도로가 꺼지고 대형 아파트 건물이 장난감 블록처럼 기울어졌다.

차원이 다른 대책 필요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전국 토지의 액상화 리스크를 표시한 '액상화 지도'를 만들어 공개했다. 어느 지역의 지반이 얼마나 위험을 안고 있는지 5단계로 나눠 표시하고, 과거에 액상화 현상이 일어났던 이력까지 집어넣은 지도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지반 개량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건설회사들도 액상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공법을 개발했다. 땅속에 파이프를 묻어 지하수를 빼내는 공법, 부지별로 격자형 콘크리트벽을 매립해 지반을 안정시키는 공법도 있다. 지자체들이 나서서 댐 주변, 간척지처럼 위험도가 큰 곳부터 우선적으로 지반 보강 공사를 수시로 한다.

문제는 끊임없이 땅 밑을 고르며 대비할 수 있을 뿐 액상화 현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니가타 지진 후 30년간 각종 액상화 방지 대책을 실시했는데도, 1995년 한신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 광범위한 지역에서 액상화 피해가 반복됐다. 그때마다 일본 정부는 지질 조사 비용, 안전 검사 비용의 일부를 국고로 보조하며 주민들과 건설회사, 지자체가 협의해 지역 특성에 알맞은 보강 공사를 조기에 실시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액상화 현상

땅속 퇴적층에 섞여 있던 토양과 물이 강한 지진의 충격으로 지반이 흔들리면서 서로 분리돼 나타나는 현상. 물이 쏠린 지역은 지표면이 물렁해지며, 흙탕물이 지표면을 뚫고 솟아오르기도 한다. 땅이 액상화하면 지반이 마치 늪과 같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건물이나 구조물의 붕괴 위험이 커진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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