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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대법원장의 山行 메시지… '코드 사법개혁' 신호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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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지시 다음날, 법원 등산대회서 사법개혁 동참 주문]

사법부 개혁 주도하는 요직에 우리법·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진보성향 판사들 다수 배치

블랙리스트 재조사위원장과 위원 6명중 4명도 두 모임 출신

"편향된 방향의 사법개혁은 법원에 큰 혼란 부를 것" 우려

지난 4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전국 법원 등산대회 회식 자리. 몇몇 대법관, 전국 법원장, 판사 등 수백 명이 모였다. 통상 대법원장이 판사들을 격려하는 자리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경품 추첨을 위해 연단에 오르자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미 행사장엔 술이 조금 돈 상태였다. 그런데 마이크를 잡은 김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는 자리가 드물 테니 몇 가지만 얘기하겠다"면서 강한 어조로 사법 개혁 동참을 주문했다. 순간 행사장에 정적이 흘렀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대법원장 말에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 주문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춘천지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직행했다. 청와대는 그를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9월 그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사법 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고 했다.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그가 정권이 요구하는 사법 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예상이 있었고, 결국 그대로 되고 있는 셈이다. '코드 사법 개혁'이란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법원 내부에선 김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 작업이 머지않아 가시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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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법원행정처가 특정 성향 판사들을 뒷조사한 문건을 갖고 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가 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 4월 법원 진상조사위가 '사실무근'으로 결론냈지만 김 대법원장은 지난 3일 재조사를 지시했다. 그로부터 하루 뒤 김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사법 개혁 동참'을 주문한 것도 그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 사안은 판사들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지난 6월 만들어진 직급별 판사 모임인 법관대표회의가 줄곧 재조사를 요구해왔던 것이다. 김 대법원장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법원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이 자신과 뜻을 같이했던 판사들의 요구에 맞춰 사법 개혁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지난 14일엔 ▲전관예우 근절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법관 인사 제도 개편 ▲재판 제도 개선 등 4대 개혁 과제를 발표했다.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로 개혁 분위기를 몰아가면서 이런 과제들에 대한 개혁 작업을 동시에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법 개혁도 분명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법원의 관료화, 부실한 재판 등의 문제는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이런 개혁 작업이 특정 성향 판사들 주도로 편향성을 보일 경우 법원에 큰 혼란과 내부 갈등만 키울 수 있다. 실제 그런 흐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 개혁을 추진하는 요직(要職)에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이 연구회 멤버가 설립을 주도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위원장에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임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2004년 우리법연구회 회장도 지냈다. 재조사위원 6명 중 4명도 김 대법원장이 회장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채워졌다.

전관예우 근절 등 사법 개혁 과제를 추진할 법원 개혁 실무준비단 소속 판사 10명 중 5명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를 요구해왔던 법관대표회의 측 판사들이다. 법관대표회의 소속 판사(97명)는 전체 판사(3000명)의 3% 수준이고, 이 중 절반 정도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 차지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최근 판사 인사 실무를 맡는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 대법관 추천위원회 위원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을 임명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이 '내 사람'으로 비칠 수 있는 인사들로만 사법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며 "사법 개혁이 편향된 방향으로 흐를 경우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 추락할 것"이라고 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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