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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포항 강진 - 특별재난지역 지정]여진 공포·추위에 밤새 떤 이재민들 “불안해서 어떻게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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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지 포항 흥해읍 실내체육관 대피소 가보니

“입던 옷만 걸치고 뛰쳐나와…정보 제공 안 해줘 답답”

피해 컸던 북구지역, 건물 붕괴 위험에 복구 엄두 못 내

1교시 국어영역 볼 시간 ‘여진’…수능 연기로 혼란 막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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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진앙지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대 주민들은 지진 발생 이틀째인 16일 공황 상태에 빠진 모습이었다. 전날 본진 이후 규모 2~4 안팎의 여진이 40차례 이상 계속되면서 지진 공포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건물이 크게 훼손돼 돌아갈 집이 없는 시민들은 대피소에서 여진의 공포에다 초겨울밤의 추위, 앞날에 대한 걱정 등 겹고생에 시달렸다.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대피한 시민들은 약 700명. 공간이 좁은 데다 대피하는 시민들이 계속 몰리면서 체육관 2층 스탠드 주변 바닥까지 가득 찼다. 이들에게는 가족 단위로 폭 1m가량의 스티로폼을 깔고 겨우 쪼그려 앉을 정도로 공간이 부족했다. 자원봉사단체가 나눠준 컵국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서수보씨(53·흥해읍 남성리)는 “내집 주변에 살고 있는 두 처제의 가족을 포함해 일가 친척 12명이 지진 발생 후 입고 있던 옷만 걸치고 도망쳐 나왔다”면서 “집 안 정리는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체육관은 ‘이재민 수용소’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내가 지니고 있는 휴대폰을 빼면 지진과 관련한 어떤 정보도 제공되지 않아 답답하다”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한 주민(50)은 “정부 요인과 중앙정치인, 지역의 선출직들이 수시로 들락거리지만 ‘그저 위로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실질적인 지원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면서 “주민대책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아 어디에다 어떻게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수성씨(58·흥해읍)는 “우리에게 지금 희망이란 게 없다”며 화를 냈다.

이번 지진으로 흥해실내체육관을 비롯해 학교·교회·주민센터 등 13곳에서 대피생활을 하는 시민은 15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집이 부서져 살 곳이 없어진 장기 대피객도 200여명으로 집계됐다.

포항시 북구 장성동 기쁨의교회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파키스탄과 프랑스 출신의 남녀 유학생(한동대)은 “머물 곳이 마땅찮아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교회에 머문다”고 말했다.

건물이 기울어져 거주가 불가능해진 흥해읍 마산리 소재 대성아파트 E동의 각 출입문은 알루미늄 문짝이 엿가락처럼 휘었고, 유리창은 풍비박산이 난 채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은 아파트 출입을 통제했고, 간혹 거주자로 확인된 주민들만 잠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옷가지 등을 챙겨 나왔다.

흥해읍 일대를 비롯해 지진 피해가 큰 포항 북구지역 곳곳에서는 허물어진 건물 외벽과 담장 등에서 나온 콘크리트 더미를 한쪽에 쌓아 놓는 등 응급조치가 이뤄졌지만, 사람이 건물 내부에서 생활할 수 있는 완전한 복구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흥해초등학교는 3층 건물 앞뒤 주기둥 곳곳의 콘크리트가 덩어리째 떨어져나가 앙상한 철근을 흉측하게 드러냈다. 학교 정문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한 60대 직원은 “건물 전체가 엉망”이라면서 “새로 짓지 않고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9시2분쯤 포항시 북구 북쪽 8㎞ 지역에서 규모 3.6의 여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당초 이 지진의 규모를 3.8로 분석했다가 하향조정했다. 수능이 1주일 연기되지 않았다면 포항 북부지역 수험생들은 1교시 국어영역 시험 시작 20분 만에 여진을 느끼고 대피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수능 연기로 시험 중 지진이 발생하는 큰 혼란을 피하게 된 셈이다.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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