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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5 (월)

[이대근 칼럼] 누가 애완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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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모든 권력은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언론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이 모든 시도의 앞뒤에는 언론 출신 협력자가 있다. 사진 오른쪽 위는 윤석열 정부에 의해 선발돼 KBS를 난폭하게 유린하고, 권력 감시 기능을 마비시킨 문화일보 기자 출신 박민 KBS 사장, 아래는 (언론이) 애완견이 맞다며 이재명의 실수를 앞장서 변호하는 YTN 기자 출신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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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언론을 애완견이라고 했다. 그는 종종 자기 통제력을 잃는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언론은 왜 나의 애완견이 되어주지 않느냐는 불만의 표출로 받아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이 커졌다는 점에서 권력과 언론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문제다.

언론은 그동안 상당한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 이재명의 의견과 활동을 보도했다. 애완견이라서가 아니다. 그럴 만한 뉴스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재명에 대해 감시견 역할을 한 것도 그가 미워졌다거나, 윤석열·검찰 애완견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재명도 누군가에게 민주당의 아버지, 여의도 대통령이라 불리는 하나의 권력이 됐다. 권력 감시는 언론이 가장 잘하는 일이며,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언론이 윤석열 감시견 역할을 했다면, 그것도 같은 이유로 그렇게 한 것이다.

민주당의 총선 승리와 정국 주도권 행사가 이재명 혼자만의 능력으로 된 것은 아니다. 언론이 윤석열 감시견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재명의 시대도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정치권력이, 언론은 자신의 애완견이 아님을 선언함으로써 언론이 정상 상태라는 사실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윤석열·검찰 감시견일 때는 이재명 애완견처럼 보이고, 이재명 감시견일 때는 윤석열·검찰 애완견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언론은 누구의 애완견이 아니다.

언론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언론 성격을 단정짓고 공격하는 행위는 언론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하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언론의 결함을 권력으로 교정하는 것은 언론과 권력 모두를 망치는 일이다. 정치권력은 정치권력이라는 이유로 언론 감시 그물망 안에 던져진 존재다. 그런 권력이 그물망을 찢고 나와, 언론이 찢어진 그물망이 됐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다.

모든 권력은 언론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통제가 거칠고 과격하다는 면에서 유별나기는 하지만, 윤석열 정부 고유의 현상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모두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자기 권력에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 이 모든 시도의 앞뒤에는 언론 출신 협력자가 있다.

권력의 언론 통제를 위해서는 언론 내부 협력자가 필요하다. 외부 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침투경로를 열어줄 내부자 말이다. 문재인 정부 때였다. 어떤 공직도 갖고 있지 않은 유시민이 조국 사건을 보도한 KBS 취재팀을 모함하는 말을 했다. 그러자 양승동 KBS 사장이 취재팀의 취재·보도를 배제하고 취재팀을 상대로 진상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방송의 신뢰성·공정성을 대표해야 할 사장이 자기 조직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공정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전 정부 때 언론 탄압에 맞서 싸웠던 그는 이렇게 다른 정부 앞에서 내부 협력자로 변했다. 권력의 직접 압박 없이 일어난 일이다. 그 사건은 반복될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은 불길함을 안겼다. 그 예감은 윤석열 정부에 의해 선발된 박민 KBS 사장이 KBS를 난폭하게 유린하고, 권력 감시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기어코 현실이 됐다.

효율적인 언론 통제를 위해서는 외부 협력자도 필요하다. 역대 모든 권력의 언론 통제를 기획하고 주도하고 실행한 것은 언론인 출신 공직자다. 자신이 권력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끼고, 권력 요구를 만족시킬 전문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전문성은 언론의 자유가 아닌, 권력의 자유를 위해 쓰일 것이다.

애완견이 맞다며 이재명의 실수를 앞장서 변호하는 노종면 의원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것 같다. 권력 감시 역할을 하다 권력의 칼날에 희생됐던 그가 이제는 새로운 권력을 위해 언론에 권력의 칼을 겨눴다. 그가 누리는 권력의 한 조각은 언론 자유에 대한 그의 헌신이 가져다준 보상이다. 그 보상에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계속 힘쓸 것이라는 기대도 담겨 있다. 그의 헌신은 평생의 훈장이다. 잠깐 누릴 권력과 맞바꿀 만큼 사소하지 않다.

언론 출신 정치인들은 알 것이다. 기자는 권력과 협력할 때가 아니라, 맞설 때 도파민이 샘솟는다. 권력과 팽팽히 대립할 때 온몸에 전해지는 짜릿한 흥분감이 주는 중독성은 진실을 추적할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언론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력이자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일 수도 있다. 자기 직업적 배경에 대한 자부심이 아직 살아 있다면, 기자로서 가슴 뛰던 때를 떠올려보기 바란다. 언론의 자유라는 공기 속에서 숨 쉬던 때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대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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