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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지민의 니술냉] 대통령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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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덕에 대박난 전통주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찬 건배주로 선정한 '풍정사계'다. 청와대가 풍정사계 춘을 건배주로 했다는 발표는 도화선이 됐다. 순식간에 '풍정사계'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관련 뉴스가 쏟아지며 주문이 폭주해 예약 주문을 포함한 모든 술이 품절되어버렸다. 세상에. 그렇게 안 팔리던 술이 동이 난 거다. 일단 술 소개부터.

'풍정사계 춘'은 어떤 술일까? 이 술은 청주시 청원군 내수읍 풍정리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화양'에서 제조하고 있다. 네 가지 제품에 사계절 이름이 따라 붙는다. 봄을 뜻하는 '춘'은 약주(15도), 여름인 '하'는 과하주(18도), 가을인 '추'는 탁주(12도), 겨울인 '동'은 증류식 소주(42도). 생긴 지 1년이 넘은 신생 양조장이지만 그 맛을 인정받고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고 있는 등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풍정사계를 추천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찹쌀, 누룩, 물로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들며 인공첨가물이 가미되지 않는다. 녹두와 밀로 직접 누룩을 빚어 쓰며, 전래되어 내려오는 법주방문에 따라 술을 빚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누룩을 직접 제조하고 있는 양조장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점수를 크게 줄 수밖에 없다. 맛의 완성도도 높다. 적당한 보디감과 산미, 약간의 단맛, 복합미가 일품이다. 와인 잔에 따라서 마시면 특유의 과실향, 꽃향이 피어올라 '화이트 와인 같은 느낌이 든다'는 평을 하는 사람이 많다. 평소 외국인들에게 우리술을 다양하게 맛보게 하며 반응을 살피는데 '춘'은 두루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국빈 만찬이나 국외 순방에서 이루어지는 정상 만찬의 건배주는 항상 이슈가 되어 왔다. 그 나라를 대표할 만한 술이 채택되기 때문이다. '춘'은 한미 정상회담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핵안보정상회의 정상만찬에서 쓰인 한국와인 '오미로제 스파클링'에 이어 전통주 '풍정사계 춘'까지 우리의 술이 국가의 큰 행사에서 빛을 발해 정말 기쁘다.

그나저나 당분간 이 술을 맛보기 힘들 것 같다. 생산되는 데만 100일이 걸리는데 예약 주문도 12월까지 밀렸다고 한다. 탁주인 '추', 증류주인 '동'도 다 팔려버렸다고. 한 병씩 가지고 있던 춘하추동을 얼마 전 홀라당 마셔버린 게 후회스럽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지민 전통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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