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 성황림 / 100년 넘게 숲의 신에게 제를 올린다 / 음력 4월8일 그리고, 9월9일 / 숲이 열리면 치악산 신이 타고 온다는 신목을 따라 신비한 숲으로 들어간다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성황림내 고목 |
강원 원주 신림에 있는 성황림을 외부와 구분해주는 것은 입구의 문과 목책뿐이다. 문에는 액운을 쫓기 위한 새끼줄이 쳐져 있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알려준다. 그리 높지 않은 목책 건너로 숲이 우거져 있다. 속계와 숲을 구분하는 것은 목책 하나뿐이지만 그 분위기는 천양지차이다.
목책 안으로 들어서자 숲길 양편으로 줄기를 곧게 뻗은 복자기나무와 느릅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서있다. 나무 아래로는 복분자, 찔레, 으름덩굴 등과 같은 덩굴식물이 어우러져 자라고 있다. 이 숲길이 예전 차가 다니던 도로였던 곳으로 이제는 작은 풀들로 뒤덮여 있다. 성황림 안으로 차가 다니지 못하게 목책을 치고, 성황림 외부로 길을 돌려 훼손을 막았다.
성황림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편으로 당집이 보이고, 그 옆에 성황림의 신목 전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주위 다른 나무와는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위용이 느껴진다. 높이는 30m이고, 굵기는 세 아름은 넘어보인다. |
마을을 지켜주는 성황림의 장승. |
성황림의 신목이 이 전나무다. 원주 치악산 성황신이 이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전나무 주위를 복자기나무, 느릅나무, 갈참나무 등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전나무의 위용에 가리지만 주위 나무 역시 다른 나무를 피해 뻗은 나뭇가지들의 모양새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수백년의 세월을 겹쳐 자란 나무들이 많다 보니 서로 가지끼리 엉겨붙기도 하고, 다른 나무를 피하기 위해 가지를 꺾기도 한 모습이 눈에 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곧게 뻗은 소나무부터 휘고 비틀린 소나무 10여그루가 어우러져 있다. 신목은 전나무이지만, 성황림에 가장 많은 수종은 복자기나무다. 박달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강원 원주 신림(神林)에 있는 성황림에서 마을 주민들은 100년 넘게 제사를 지내며 숲을 보호해왔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지만 음력 4월 8일과 9월 9일 제삿날에는 일반에 개방한다. 조선시대 때부터 이 지역이 신림으로 불린 이유가 신들의 숲이라 불리는 성황림 때문으로 이 숲은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
조선시대 때부터 이 지역이 신림(神林)으로 불린 이유가 신들의 숲이라 불리는 성황림 때문으로 이 숲은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이전에는 현재 성황림을 ‘웃당숲’이라 부르고, 500m가량 떨어진 성남교 부근의 소나무 숲을 ‘아랫당숲’이라 불렀다. 아랫당숲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수해로 나무 대부분이 유실돼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된 상태다.
강원 원주 성황림 입구에는 액운을 쫓기 위한 새끼줄이 쳐져 있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알려준다. |
원주 고판화박물관의 ‘오륜행실도’ 목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4각의 일본 화로용구로 만들어 훼손됐다. |
고판화박물관 마당에선 바라보는 감악산은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 옆 모습 형상이 띠고 있다. |
1915년 조성된 용소막성당은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양옥 벽돌 성당으로 붉게 단풍이 들고 있는 굵은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주위를 감싸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
신림에는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용소막성당이 있다. 조선시대 때 박해를 받던 교인들은 한양에서 멀지 않은 강원도로 몸을 피했고, 교우촌을 형성했다. 성당이 자리 잡은 마을은 용의 형상을 닮아 용소막이라 불렸는데, 신앙의 자유가 생기자 이 지역에 신자가 늘어 1915년 성당이 들어섰다.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양옥 벽돌 성당으로 붉게 단풍이 들고 있는 굵은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주위를 감싸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원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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