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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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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블랙 미러3: 샌 주니페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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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개최된 제69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친 존재감’ 시상 부문이 있었다면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차지였을 것이다. 과거 트럼프의 티브이쇼가 에미상을 수상했다면 대선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행자의 발언으로 시작해서 <에스엔엘>(SNL)에서의 트럼프 대통령 풍자 연기로 코미디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앨릭 볼드윈이 ‘여기 트럼프의 에미상이 있다’고 화답하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될 때마다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심기가 불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시상식 시청률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비난성 글을 올렸다.

에미상 시상식의 날선 풍자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트럼프 시대의 인종주의와 표현의 자유 억압을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실제 시상식 결과도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을 지향한 점이 눈에 띈다.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이 최우수 작품상을 휩쓸었고, <마스터 오브 제로>의 배우 겸 작가 리나 웨이스가 ‘흑인 여성 최초’로 최우수 코미디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성과 인종의 다양성이 두드러졌다. 특히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 수상작 중 하나는 최우수 티브이 영화상에 빛나는 <블랙 미러3-샌 주니페로>(이하 <샌 주니페로>)다. <블랙 미러>는 역대 최고의 티브이 에스에프(SF) 시리즈로 평가받는 수작으로, 매 회가 높은 완성도의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샌 주니페로>는 시즌3의 네번째 에피소드이며, 여성, 흑인, 성소수자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이야기는 1987년에서 시작한다. 복고풍 묘사로 가득 채워진 화면부터가 주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에서 남다른 개성을 풍긴다. 주인공 요키(매켄지 데이비스)는 처음 방문한 샌 주니페로라는 곳에서 켈리(구구 음바타로)를 만난다. 매사에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요키와 달리 켈리는 활기차고 감정 표현에도 적극적이다. 클럽에서 둘이 함께 춤을 출 때도 요키는 주위의 시선이 두려운 반면, 켈리는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 “여긴 개방적이에요. 우리를 쳐다봤다면 내가 너무 멋져서 그럴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켈리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기란 어렵다. 그녀와 ‘인생 최초의 섹스’를 나눈 요키는 시간이 지나 또다시 샌 주니페로를 찾지만 켈리는 어딘가로 사라진 뒤다.

<샌 주니페로>는 아름답고 찬란한 퀴어멜로다. 서늘하고 건조한 디스토피아가 지배하는 <블랙 미러> 시리즈에서 이렇게나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라니. 하지만 그 낭만적 로맨스가 성소수자들이 처한 냉혹한 환경 위에 세워진 이야기라는 것을 환기하는 결말부에 이르면 이곳이 여전히 디스토피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 또한 뚜렷하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늘 딜레마를 겪게 하는 <블랙 미러> 시리즈의 정수가 켈리의 마지막 선택을 두고서도 빛을 발한다. 그들의 결말은 과연 해피엔딩일까, 비극일까.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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