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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허연의 책과 지성] 묵자(墨子) (BC 479년경 ~ BC 381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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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 대륙은 모략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제후들은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혹은 다른 제후에게 점령되지 않기 위해 날만 새면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근사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백성들이었다.

살육과 기아의 공포에 떨던 대륙에 한 명의 사상가가 등장한다. 묵자(墨子)다. 그는 "굶주린 자가 먹지를 못하고, 추운 자가 옷을 얻지 못하며, 수고하는 자가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환난"이라고 외쳤다.

묵자에게 전쟁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가져다주는 정치행위였다. 그는 입으로만 바른 정치를 논하는 위정자들에게 닥치고 전쟁이나 그만하라고 외친다.

묵자는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공자나 맹자와는 아주 다른 사상을 들고 중원에 나왔다.

목공 노동자 출신이었던 그는 깨달음이나 수양을 중시하는 신비주의적인 사상에 반기를 들었다. 올바른 세상은 실천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나무로 만든 솔개는 나무 수레만 못하다."

묵자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아무리 멋진 솔개를 만들어봐야 배고픈 백성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나무가 있다면 이왕이면 수레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묵자는 백성에게 가장 유효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올바른 군주라고 믿었다.

"양자강과 황하는 작은 물줄기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강이 될 수 있었다."

작은 실천 없이 큰 정치를 운운하는 건 묵자가 보기에는 한낱 공염불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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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가 내세운 사상의 핵은 겸애(兼愛)다. 겸애는 박애와 좀 다른데, 대상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묵자의 겸애에는 공리주의적 성격이 들어 있다. 겸애는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서 비롯된 물리적 행위를 포함한다. 즉, 말로만 하면 사랑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세상을 물리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직관을 중시한 공자와 달리 논리적 이성을 중시한 묵자는 유형화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삼표(三表)다. 말에는 반드시 세 가지 표준이 있어야 한다는 지침이다. 역사적 표본, 경험적 근거, 현실적 유용성이 그것이다. 옛날 성군들의 업적을 표본 삼아 직접 눈과 귀로 듣고 본 사실에서 근거를 찾고, 어떻게 시행하는 것이 국가와 백성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살펴보라는 뜻이다.

묵자는 공자를 수장으로 하는 유가철학의 대척점에 서서 견고한 성을 쌓았다. 하지만 묵자의 사상은 긴 시간 동안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있었다. 한무제(漢武帝)가 "모든 제자백가들을 물리치고 유학만을 숭상한다"는 선언을 한 이후부터였다.

세월이 흘러 묵자가 다시 살아돌아온 건 그의 사상이 국민주권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 틀과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묵자의 가르침 중에 "말싸움에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지침을 좋아한다.

묵자는 지면 기분 나쁘고 이기면 친구를 잃는 게 논쟁이라고 했다. 그는 논쟁하기 전 두 가지를 고려하라고 가르쳤다. 이긴다 해도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고 얻어낸 승리이기 때문에 결국 상대를 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첫째 고려사항이고, 따라서 결국 아무것도 개선(改善)하지 못한다는 것이 둘째로 고려할 점이라는 것. 물론 필자도 잘 실천하지는 못한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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