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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두바이에서 경험해 보는 9월의 해피 뉴이어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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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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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파일럿 도전기-20] 1998년에 개봉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뭔가 제목을 보면서 '참 영화 타이틀이 시적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당시에는 못 봤고 시간이 흘러 2013년 가을에 재개봉했을 때 관람했다.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한석규).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차 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을 만나게 되고 차츰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밝고 씩씩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스무살의 주차 단속요원인 다림 역시 단속 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드나들던 사진관 주인 정원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정원이 다림에게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습니다"라고 말한 대사가 아직도 뭉클하게 다가오곤 한다.

갑자기 왜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얘기를 꺼냈느냐면, 두바이에서 이 비슷한 것을 체험하게 됐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아주 엇비슷한 '9월의 설날'인 이슬람의 새해 무하람(Muharram)이다. 무하람은 '처음의, 최초의, 초기'라는 뜻의 '아왈(Awal)'을 붙여 '아왈 무하람(Awal Muharram)'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9월의 새해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 선조들이 음력을 사용해서 설날과 추석을 계산했듯이 이곳에서는 이슬람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추석이 매년 바뀌는 것처럼 무하람도 같은 이유로 9월이 될 수도 있고 10월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건 1월 1일이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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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국가공휴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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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력은 이슬람 세계의 전통적인 역법으로, 연호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그레고리력 622년 9월 20일(혹은 7월 16일), 즉 헤지라(거룩한 도망)를 원년으로 삼아 헤아린다. 조금 더 이슬람력에 대한 설을 풀어보면, 1월은 '알 무하람'이라고 부르고 의미는 '금지의 달'이다. 이슬람 이전부터 아랍인들은 전통적으로 이 달에는 전쟁을 금지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시아파에서 가장 크게 기리는 '아슈라'가 이 달에 있다. 시아파 성지 각지에서 사람들이 운집해 3대 이맘 후세인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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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라잡(Rajab)'이라고 부르며 의미는 '명예의 달'이다. 성스러운 달로 어떠한 전쟁과 싸움도 금지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9월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라마단(Ramadan)'으로, 의미는 '무더움의 달'이다. 이 한 달 동안 무슬림들은 무더운 낮 동안 물과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견딘다. 1년의 마지막인 12월은 '둘 힛자(Dhul Hajjah)'라고 부르며 의미는 '순례의 달'이다. 이슬람 이전부터 아랍인들은 이 시기에 메카로 순례를 떠났으며 마찬가지로 전쟁과 싸움을 할 수 없는 달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무슬림들은 이 시기에 메카로 순례를 떠난다.

이슬람력에서는 주로 초승달의 움직임을 보면서 각 날짜와 휴일을 공포하고는 하는데, 재밌는 건 천체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매달의 시작을 각국의 권위 있는 이맘들이 눈으로 초승달이 떠오르는 것을 직접 보고 선포하기 때문에 휴일 날짜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휴일을 예상하기 위해 그 즈음 되어서 현지 외신을 읽는 건 필수다.

2017년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양력으로 9월 21일을 무하람으로 정한다고 이틀 전인 19일에 공식 발표를 했다. 무하람 휴일은 총 3일로 우리나라 설날과 똑같다. 사실 이슬람 내부에서도 이제는 천문 계산으로 이슬람력을 정확히 계산하자는 주장도 없는 건 아니나,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요시하는 이슬람국가 특성상 아직 이런 전통 관습이 많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같은 이슬람국가라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수니파 국가와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시아파 국가의 설날을 보내는 모습이 다르다는 점도 특기할 점이다. 예를 들어 수니파 국가인 UAE에서는 무하람 때 대형 쇼핑몰에서 손님을 끌어모으려는 공연을 하고 새해가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신년 세일 행사를 하지만, 시아파 국가인 이란에서는 무하람 때 경건하고 조용하게 보내곤 한다. 이들은 검은 옷을 주로 입고 공연이나 전시회도 최대한 자제한다.

이때 서기 680년 시아파가 숭모하는 종교 지도자 이맘 후세인이 카르발라 전투에서 전사한 것을 추도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맘 후세인의 적은 다름 아닌 수니파 우마이야 왕조. 수니파와 시아파가 확실히 대립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 바로 이 카르발라 전투인데, 이맘 후세인이 수니파 군대에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역사적 비극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시아파에 매우 중요한 종교 의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1500년이 지난 지금도 격렬히 대립하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들. 최근 카타르 단교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많이 깊고 상처 역시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시아파, 특히 이란 얘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게 좋고 하더라도 말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매너를 꼭 보여야 한다.

물론 이런 역사적 배경이나 의미에 대해 전혀 몰라도 두바이에서 무하람 연휴 때 쉬고 노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그 나라를 깊이 이해하고 애정을 갖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법이다. 이곳 무슬림 동기들에게 시범 삼아 "해피 무하람!!!"이라고 말해 보니 "어떻게 너가 무하람을 알아?" 하면서 깜짝 놀라면서 좋아하는 것을 보니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다 똑같다고 느꼈다. 어쨌든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이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Flying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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