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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법과 사건] 폰지 사기 주의보① 어느 금융사기 피해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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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억대 폰지사기사건.. 국세청 전직공무원 출신이 주범

이코노믹리뷰

조태진 법조전문기자


#1. 대기업 중견 간부로 일찌감치 명예퇴직을 한 A씨. A씨는 퇴직 후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재테크 공부를 하던 중 우연찮게 국세청 공무원 출신인 전모씨의 ‘절세’강의를 듣게 되었다.

당시 전모씨는 A씨와 같은 퇴직자는 물론, 주부, 교사, 보험설계사,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군, 연령층의 수강생을 몰고 다닐 정도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강의로 재테크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고수’로 통하는 스타강사였다.

A씨가 전모씨의 강의에 매료되어 갈 즈음, A씨는 전모씨가 주식회사 위리치에셋(이하 위리치에셋)이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해 일종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모씨는 위리치에셋이 판매하는 부동산, 금융상품에 가입해 투자를 하면 연 18~30% 상당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덕분에 전모씨의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 중 상당수, 그리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까지 몰리며 위리치에셋 상품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실제로 위리치에셋 상품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모두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이만한 투자거리가 또 있을까?

A씨는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여윳돈 2000만원 정도를 위리치에셋 상품에 투자하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위리치에셋 상품은 정확한 날짜에 정확한 수익을 되돌려주었다. 위리치에셋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가 두터워지면 두터워질수록 위리치에셋의 규모도 커져만 갔다.

당초 주식회사 지산세법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영세하게 출발했던 위리치에셋은 은행원 출신의 김모씨를 본부장으로 영입하면서 2016년초에는 ‘위리치그룹’으로까지 사세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전모씨는 위리치그룹 안에 부동산 투자, 크라우드 펀딩, 미디어 등 다양한 회사를 설립하며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2.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 것으로만 보이던, 그래서 위리치(We Rich)라는 회사명처럼 상품 가입자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만 같던 위리치 그룹에도 위기가 닥쳤다. 2016년 상반기를 즈음해 위리치에셋이 유사수신행위를 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그 동안 위리치에셋을 믿고 적잖은 돈을 투자해 온 A씨는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지금껏 위리치에셋이 수익배당을 게을리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A씨는 자신의 퇴직금을 이미 모두 위리치에셋에 투자한 터라 혹시라도 위리치에셋에 투자한 돈이 이번 수사로 묶여 버리기라도 한다면, 매우 난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특히 전모씨가 위리치그룹의 회장에 취임하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위리치그룹의 실무를 맡아보던 김모씨는 “만약 위리치에셋 상품에 문제가 있다면 검찰이 우리를 가만히 두겠느냐?”며 오히려 위리치에셋이 수사 선상에 놓여있다는 점을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데 이용하였다. 김모씨의 말을 듣고 보니 위리치에셋에 대한 A씨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높은 수익을 보장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최고의 투자 상품. A씨는 자신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부터 담보대출을 받고, 친인척ㆍ지인들의 돈까지 끌어들여 위리치에셋 상품에 투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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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원대 투자금을 편취, 중국으로 도주한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들 출처=뉴시스


#3. 2017년 6월 17일. A씨는 2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전모씨를 대신하여 위리치에셋을 이끌어 오던 김모씨가 자신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는 문자만 남긴 채 위리치에셋 투자관련 서류와 은행거래를 위한 OTP를 모두 챙겨들고 그의 가족들과 해외로 도망을 갔다는 소식을 위리치에셋 직원들로부터 듣게 된 것이다.

A씨가 최근까지 위리치에셋에 투자해 받지 못한 돈은 원금만도 8억원. 매달 8억원에 대한 막대한 투자수익만으로도 제법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A씨는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김모씨의 도주로 자신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갚아야 할 생각을 하니 A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제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이야기 하나. 위리치에셋에 털어 넣은 큰 아이 결혼자금은, 그리고 우리 부부 노후자금은 또 어떻게 하나. A씨는 죽지 못해 산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모씨는 어딘가에서 우리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있겠지? 또 이 사태를 만든 전모씨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기에 고객들, 아니 피해자들 앞에 나타나지도 않고 있는 것일까? A씨는 답답하기만 하다.

#4. 국세청 9급 공무원 출신으로 부동산업계에서 조세전문가로 알려진 전모씨와 지방은행원 출신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모씨는 위리치에셋이라는 불법유사수신업체를 만들고 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모자들을 페이퍼 컴퍼니의 임원으로 내세워 피해자들에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금융 상품을 판매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판매한 금융 상품들은 실제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수익률만큼의 수익을 보장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의 주장과 달리 판매사실을 공지해 피해자들로부터 돈만 유치했을 뿐 실제로는 투자되지 않은 사업도 적지 않았다.

특히 그들은 피해자들로부터 투자 명목으로 받은 돈의 상당 부분을 정해진 용도대로 투자하지 않고 다른 목적에 전용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돌려막기’를 해 왔다. 가령 제대로 투자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한 피해자들에게도 마치 그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인양 다른 사업에 투자한 피해자들의 돈을 해당 피해자들에게 수익을 배당하였다.

이 같은 내막을 알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위리치에셋이 약속한 수익이 제 때 들어오자 안심하고 다른 사업 건에도 추가로 투자를 하였는데, 초기에 작은 규모의 투자로 시작한 A씨가 마지막엔 8억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하게 된 것도 전모씨와 김모씨의 이와 같은 지능적이고 악질적인 수법에 무방비로 당한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적 사기범죄를 주도한 전모씨와 김모씨는 아직까지 신병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250억원대의 금전적 피해, 300여명의 피해자들을 남긴 채, 지금도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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