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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시위 소음' 시달린 청운효자동 주민들 '침묵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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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인근 집회 때문에 고통"… 확성기 없이 대국민호소문 낭독]

"촛불집회 전엔 동네 조용했는데 요즘은 벽 울릴 정도로 웅웅대"

팻말 들고 불법천막 앞에 서자 "정당한 집회 방해말라" 소리쳐

장애인 돕던 동네 빵집은 "시위에 두손 두발… 폐업 걱정"

17일 오전 10시 30분쯤 청와대로부터 2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청운효자동 집회·시위 피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종구(60)씨가 대국민 호소문을 읽어 내려갔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우리 동네가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집회 시위의 장이 됐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고성능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고…."

조선일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주민들이‘집회 시위 제발 그만’‘예전처럼 조용히 살고 싶어요’등의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청와대와 가까운 이곳 주민들은 최근 들어 전국에서 몰려든 시위대로 인해 심각한 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 /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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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마이크나 확성기를 쓰지 않았다. 주민센터 맞은편 종로구 장애인복지관에서 나온 수화(手話) 통역사가 김씨의 말을 수화로 통역했다. 청운효자동에는 국립서울농학교와 국립서울맹학교가 있다. 주민 80여명은 '예전처럼 조용히 살고 싶어요' '집회 시위 제발 그만'이라고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었다. 대다수가 이곳에서 30년 이상 산 토박이들이다.

호소문 낭독을 마친 주민들은 주민센터 앞 사거리에 서서 손팻말을 들었다. 구호는 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약 30분간 '조용한 시위'를 이어갔다. 주민들 앞에는 두 달여 전에 민노총 금속노조가 인도(人道)에 친 불법 천막이 있었다. 천막 안에 있던 노조원 1명이 나와 "우리도 집회 신고하고 정당하게 집회 중이니 방해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청운동에 46년째 살고 있는 박복순(70)씨는 "왜 자기들 권리는 주장하면서 우리가 조용히 쉴 권리는 생각 못 하느냐"고 했다. 대책위는 오는 9월 서울행정법원에 집회가 가능한 시간과 소음을 규제하도록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참았던 주민들이 한계에 다다랐다. 가능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해서 조용한 동네를 되찾자는 데 뜻이 모아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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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효자동은 큰 소리 날 일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 인왕산 자락 아래 경복궁 옆에 있는 청운효자동은 층수 제한과 건물 개축 규제가 엄격하다. 나지막하고 오래된 주택들이 많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특히 청와대 인근 경비가 삼엄해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덜 됐다. 동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해 11월 열린 촛불 집회 때부터였다. 광화문광장에서 머물던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했다. 처음엔 경복궁역까지만 진출이 가능했다. 나중엔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곳까지 허용됐다. 동네가 시위대에 완전히 휩싸인 것이다.

대책위는 지난 8일부터 열흘간 '집회·시위 주민 피해사항'을 접수했다. 모두 105건이 들어왔다.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 대책위는 "집회 소음을 측정해 보니 90㏈(데시벨)까지 나왔다"고 했다. 현행법상 주간 소음 기준은 65㏈이다. 50년간 효자동에 살았다는 한 주민은 "잡상인 소리 한번 안 나던 집이었는데 요즘은 벽이 울릴 정도로 웅웅댄다"고 했다.

지역 상인들 피해도 심각하다. 효자동에 있는 빵집 '김용현 베이커리'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집회로 매출이 떨어져 매장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이 가게는 서울 홍제동에서 20년 넘게 빵집을 운영하던 제과기능장 김용현(60)씨가 지난해 4월 효자동에 오픈한 '2호점'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김씨는 '빵빵한 나눔데이'를 만들어 수익금 중 일부를 종로구 장애인복지관에 후원해 왔다고 한다. 올해 초부터는 청운효자동주민센터와 함께 저소득 가구 아동, 청소년에게 생일 케이크를 매달 무료로 지원해 왔다. 김씨는 "이 동네에 애착을 갖고 가게를 열어 운영해 왔다. 1년 4개월 만에 집회 시위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폐업을 걱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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