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날것'들과 노니는 두 남자… 뚝심 하나 좋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黑磁대가 김시영·스타목수 이정섭]

일그러진 흑자·투박한 목가구, 재료의 본성 날것 그대로 표현

틀에 얽매이지 않는 美學 추구… 23일까지 백악미술관서 전시

홍천 사는 도공 김시영(60)과 목수 이정섭(46)은 여러모로 닮았다. 물레 돌리고 톱질하다 막 나온 듯한 꺼벙한 행색이며, 하회탈처럼 헤벌쭉 웃는 품이 그러하다. 쇠심줄 고집도 같다. 순한 촌사람인 것처럼 보여도 도자 굽고 목물(木物) 만드는 원칙에 타협이란 없다. "누굴 흉내 내는 건 질색이에요." "틀에 박혀 예쁜 거 말고 자유분방하게 이쁜 게 좋지."

흑자(黑磁)로 국내 최고라는 평을 받는 김시영의 그릇과 미니멀 목가구로 한때 청담동을 휩쓴 스타 목수 이정섭의 가구가 만났다.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23일까지 열리는 '날것에서 예술로(From Raw Material To Art Work)'. 전시를 기획한 서울대 정영목 교수는 "흙, 물, 불, 나무 등 '날것'들과 씨름하며 오로지 노동으로 승부 걸고 사는 두 장인의 작품은 각종 플라스틱 제품과 비닐 포장이 난무하는 시대에 '진짜'가 무엇인지, 뚝심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5일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만난 도공 김시영(오른쪽)과 목수 이정섭. 낡은 티셔츠에 털신을 꿰어 신은 차림새만큼이나 그들이 만든 그릇과 가구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다. /장련성 객원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장엔 투박과 파격이 넘친다. 검은빛 흐르는 항아리들은 한쪽이 일그러져 있거나 주둥이가 없고, 바닥에 덩어리째 툭 던져진 참나무 둥치는 쓰는 사람에 따라 탁자도 되고 의자도 된다. 한치의 어긋남도 불허했던 목수의 변심(變心)은 유별나다. "판매에 신경 쓰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랄까? 하하! 돈 벌어야겠다는 욕심을 버리니 자유가 왔어요."

김시영은 서예가 두남 이원영 집에서 자랐다. 용산공고,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세라믹 공장에서 일하다 두남 선생의 권유로 한국에선 사라져가던 흑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흑자는 청자의 우아함과 백자의 질박함이 공존하는 화려한 그릇이죠. 광물질이 많이 함유된 자연흙으로, 굽는 방식에 따라 광채가 나기도 하고 칠흑처럼 검은색이 나오기도 하고요. 파고들수록 그 세계가 넓고 깊어 한눈팔 겨를이 없었습니다." 흑자에 빠진 가난한 도공을 천주교 춘천교구 장익 주교가 알아봤고, 정양모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소개해 세상에 이름이 났다. 일본 '미술가명감(美術家名鑑)'에도 나올 만큼 흑자 대가(大家)의 반열에 올랐다.

조선일보

살짝 일그러져 더 아름다운 김시영의 흑자와 거대한 나무토막을 던져놓은 듯한 이정섭의 테이블. /백악미술관


이정섭의 궤적은 좀 더 기이하다. 마산고 중퇴, 서울대 서양화과 건성으로 졸업,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지하보도에서 첫 개인전, 태백에서 목수 일 배운 뒤 '내촌목공소' 설립, 청담동 명품 브랜드로 등극. 대목(大木)으로 전환해 집도 짓기 시작한 그는 "한국 건축계의 벼락같은 축복" "면허 없는 건축가의 치기 어린 실험"이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같은 홍천에 살면서도 북쪽 끝, 동쪽 끝에 살아 만날 일 없던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의 작품을 알아봤다. "솔직히 난 도자기가 싫어요. 대부분 전통을 이미테이션하니까. 근데 김시영의 흑자는 다르더라고요. '도자기' 하면 떠오르는 도자기가 아니라서! 인생을 걸 만하죠."

정형(定型)에서 벗어나려는 두 사람의 실험은 끝이 없다. 이정섭은 1년 전부터 쇠를 다룬다. "강렬한 에너지가 좋아서요. 철근 콘크리트로도 실험해요. 나무나 쇠로 만들 수 없는 수십m 길이 가구도 콘크리트로는 만들 수 있으니까." 김시영의 '제멋대로' 자기도 계속 진행 중이다. "그거 아세요? 가마 온도가 너무 높아 도자기가 주저앉는 찰나에 정말 멋진 그릇이 나온다는 거. '세상에 없던 아름다움'을 구현해보고 싶어요." (02)734-4205

[김윤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