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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정부 코드 맞추는 재계...상생방안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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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달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에게 30일 이내에 현금으로 물품대금을 지급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어음 거래가 사라져 3000여개 2차 협력사의 자금 순환이 빨라지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1차 협력사에 현금으로 물품대금을 지급해 왔다. 이번 조치는 1차 협력사와 2차 협력사 간 일부 거래에서 어음이 쓰이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조치는 새 정부의 공약에 대한 호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약속어음의 단계적 폐지는 중소기업을 자금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라며 약속어음 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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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들이 정규직 확대, 협력사 상생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또 새 정부의 ‘일·가정’ 양립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직원들의 휴가를 늘리고 퇴근 후 업무지시를 없애는 등 조직문화 개선책도 제시했다.

◆ 대기업 상생방안 잇따라

재계는 협력업체와 상생 모델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SK그룹은 25일 2∙3차 협력업체들과 상생을 위해 1600억원 규모의 전용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또 4800억원 규모로 운영중인 동반성장펀드는 6200억원으로 1400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특히 하도급 업체는 물론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현금지급 비중을 100%로 늘리기로 했다.

앞서 현대자동차그룹과 LG디스플레이 등도 지난 20일 2,3차 협력사 지원 방안을 내놓는 등 문재인 대통령과 간담회를 앞둔 대기업들의 상생방안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직접 거래 관계가 없는 2·3차 협력사에 대한 지원과 1차-2·3차 협력사간 상생협력 체계 강화에 초점을 뒀다. 이를 위해 500억원을 신규 출연해 지원하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도 자사의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2차·3차 협력사 직원이 암이나 희귀질환에 걸릴 경우 LG디스플레이 직원이 받는 것과 동일한 의료 지원을 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협력사가 설비 투자나 신기술 개발 등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면 무이자로 대출해 주기로 했다.

재계는 조직문화 혁신에도 나서고 있다. CJ그룹은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한 달간 ‘자녀 입학 돌봄 휴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SK그룹은 외국 기업처럼 연월차를 더해 최장 3주의 여름휴가를 낼 수 있는 ‘빅 브레이크(Big Break)’를 도입한다. 또 SK텔레콤은 이달부터 ‘초등학교 입학 자녀 돌봄 휴직 제도’를 신설해 직원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직원의 성별에 상관없이 최장 90일의 무급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임신한 여성은 임신과 동시에 출산 전까지 임신 전 기간에 하루 6시간만 근무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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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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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상생방안 등에 속도를 내는 것은 정부가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것과 무관치 않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7일 열린 대한상의 CEO 조찬 간담회에서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최대한 기다리겠지만 한국 경제에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서 기업들의 자발적 변화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그룹 계열사나 1차 협력사 관계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면서도 "2차, 3차 등 아래로 내려갈 수록 거래조건과 근로조건이 열악한 상황인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재계의 자발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보여주기식 그쳐선 안돼…과도한 정부 개입은 부담 가중할 수도”

전문가들은 재계가 과거처럼 보여주기식에 그쳐서도 안되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도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지난 11일 15개 대기업 그룹사와 함께한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과거의 ‘보여주기 식’ 투자·고용 계획보다는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통해 사회와 약속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며 "정부의 정책 변화뿐 아니라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많아지고 있어 그룹별로, 계열사별로 형편에 맞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솔선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이윤을 나누는 개념의 동반성장에 거부감이 상당했다"면서 "그러나 기업의 정체성이 이윤 극대화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당성'의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사회 문제에 동참하는 쪽으로 정체성을 바꾸고 있다"며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측면에서 필수적인 부분이 됐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투자, 고용 등 국가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정부가 과도하게 사기업의 경영활동에 개입하는 것이 부담을 늘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룹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규직 전환 및 근로시간 단축을 실시하면 비용 상승에 따른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회는 물론 기업이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래야지만 국가경제나 기업의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dwi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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