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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5월 증인’ 푸른 눈의 선교사 허철선 “광주에 묻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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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80년 광주기독병원 원목실장 헌틀리 별세

‘5·18’ 참상 찍고 증거 모아 미국쪽 전달

부인 허마르다와 ‘20년 봉사’ 85년 귀국

유언따라 10월 ‘유골 절반’ 가져올 예정



한겨레

지난 6일 광주시 양림동 옛 선교사 사택에 마련된 찰스 헌틀리(허철선) 선교사 빈소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의 안식을 기원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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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출신인 찰스 헌틀리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허철선’입니다. 미국 남장로교회 한국선교회 소속으로 지난 65년 9월 그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선교 동역자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는 69년부터 85년까지 광주에서 사역활동을 했습니다. 저와는 69년 가을부터 허 선교사 부부가 사택에서 진행했던 영어 성경 공부반 ‘먼데이 미팅’에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허 선교사 부부는 80년 광주기독병원 원목실장으로 ‘오월 광주’를 겪었습니다. 부부는 5·18의 참상을 촬영해 사택 지하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뒤 지인들을 통해 몰래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최근 개봉된 5·18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인물인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사택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군인들의 총에 맞아 광주기독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들의 몸에서 나온 ‘엠-16’ 총알과 엑스레이 필름 등을 챙겨뒀다가 훗날 주한 미국대사관 등에 ‘항쟁의 진실’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허 선교사가 미국 듀크대 역사학도 출신이고, 그 부인 허마르다 역시 버나드대학을 나와 노스캐롤라이나주 지역 매체 <샬럿 업저버>에서 기자로 일한 적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정의의 편에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부부는 80년 5월17일 오후, 광주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쓰러지고 쫓기던 학생들의 가방과 신발, 옷가지 등을 사진에 담고 슬픈 마음으로 사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20여명의 학생들이 애절한 눈빛으로 보호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광주 양림동 선교부 사택에는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채 서너 가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다른 사택의 문을 두드렸으나 “만일 경찰이 수색해 온다면 당신네들이 우리 집에 있다는 것을 거짓말할 수 없다”고 해 발길을 돌려야 했답니다. 허 선교사는 “정의를 위해 기꺼이 거짓말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부터 부부의 사택은 항쟁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의 ‘도피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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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현 광주시장이 지난 6일 헌틀리 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광구시 양림동 옛 선교사 사택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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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선교사는 하나님을 위하여, 광주시민을 위하여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부당한 공권력으로 일반 시민의 생명을 빼앗는 만행을 지켜보며 ‘골리앗을 용서하지 못하는 다윗의 의분을 느꼈던 것’입니다. 부인 허마르다도 <코리아 타임즈>나 <코리아 헤럴드>에 전속 기고자로서 5·18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자주 기고했습니다.

부부는 자녀 1남3녀 중 아들인 셋째 마이클을 광주 학동의 한 보호시설에서 입양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데려온 날 기뻐하던 모습, 병원에 입원했을 때 걱정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부부는 선교사 사역 기한 20년을 채운 85년 광주를 떠났습니다. 마지막 방문은 95년이었습니다. 오월어머니집은 지난 5월 제11회 오월어머니상 수상자로 허 선교사를 선정했습니다. 부부는 제자인 홍장희 목사로부터 오월어머니상 수상을 전해 받고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지난 6월26일 허 선교사가 소천했다는 소식에 깊은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안성례·안영로·송정용·최평용·홍인화씨와 마음을 모아, 부부가 살았던 사택에 빈소를 마련하고, 지난 9일 광주 수피아여고 커티스메모리얼홀에서 추모 예배를 올렸습니다. 허 선교사는 “유골의 절반을 광주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큰딸 메리와 셋째딸 제니가 10월 중순 유골을 모시고 광주에 오기로 했습니다. 고인은 호남신학대 선교사 묘역에 안장됩니다. 생전 미국인이었던 고인은 이제 ‘영원한 광주 시민’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차종순/전 호남신학대 총장·광주 동성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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