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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주 6일 함께 점심… 밥상 공동체, 새로운 실버 복지 사례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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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한 토막 더 무 보이소"… 情이 오가는 자리

영덕군, 경북도내 최초 실시

조선일보

급식 도우미로 선정된 마을 부녀회원들이 마을회관에서 생선을 굽고 있다.


지난 8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수1리 마을회관. 정오 무렵 마을 어르신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을회관 주방에선 생선을 굽거나 반찬을 담는 손길이 분주하다. 어느새 갓 지은 쌀밥과 김·참깨 가루가 뿌려진 도토리묵, 콩나물무침, 상추·풋고추 등의 야채와 가자미구이가 곁들여진 밥상이 차려졌다.

"오늘 가자미는 노릇노릇하게 참 잘 구워졌네. 명선네 어무이요. 이거 한 토막 더 무(먹어) 보이소." 변영웅(72)씨는 연세가 더 많은 어르신에게 생선 한 토막을 슬쩍 건넸다.

"요 상추는 내가 직접 솎아 온 거 아이가. 날이 가물어도 제가 정성껏 키운 거니 모두들 알고는 잡수셔." 한 어르신이 자신이 가져온 상추를 은근히 자랑하자 "오냐, 잘 묵을께"라며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차림이 화려하진 않아도 20여명의 마을 노인들의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밥상 공동체 사업 최고 '실버 복지'

이 마을 노인들은 지난해부터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간 함께 모여 점심을 먹는다. 영덕군이 시행한 '밥상 공동체' 사업 덕분이다. 평소 홀로 집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는 엄두도 나지 않던 밥상은 건강과 마을 화목까지 챙기는 역할을 한다. 채소류와 같은 찬거리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보태거나 급식 도우미로 선정된 마을 부녀회원들의 인건비마저 식재료에 보태다 보니 밥상은 더욱 풍성해진다. 김규린(78) 화수1리 노인회장은 "예전엔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거나 끼니를 거르는 분이 많았지만 여럿이 모여 밥도 먹고 대화도 하니 사는 게 훨씬 즐겁다는 노인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영덕군이 경북도 내 최초로 시행 중인 밥상 공동체 사업이 새로운 실버 복지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개인이 최소 비용을 부담하면 군에서 급식 예산을 지원하는 이 사업은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독거 노인 증가에 따른 '노인 돌봄' 문제를 공동체 활성화로 풀어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밥상 공동체 사업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밥상 공동체 사업의 핵심은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하는 것이다. 군은 1개 경로당에 연간 급식 도우미 인건비 720만원과 부식비 100만원을 지원하고, 주민들은 월 3만~5만원을 내 자체적으로 마을 부녀회원들이 당번으로 급식을 해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 사업은 밥상머리 소통으로 이어져 자연스레 한 식구가 되면서 유대감이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조선일보

“함께 먹으니 너무 맛나요.” 지난 8일 영덕군 영덕읍 화수1리 마을회관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영덕군은 ‘함께하는 밥상공동체’ 사업을 통해 취약 계층 노인들의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고 안전을 확인하며 건강도 증진시키고 있다. / 영덕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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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함께 모여 점심… 지역사회 안전망

경로당에선 식사 시간대마다 매일 인원 점검을 하기 때문에 질병이나 고독사 등을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어 지역사회 안전망 역할도 한다. 대도시로 떠난 자식들이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 마을회관으로 문의하면 금세 행방을 알 수 있다. 혹시 나이 많으신 분이 점심 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전화를 하거나 방문해서라도 찾아 모신다.

영양가 있는 식단과 규칙적인 식사로 건강이 좋아지는 효과도 얻고 있다. 겨울철엔 노인들이 난방비 걱정 없이 취미 생활을 함께하면서 농어촌의 활력이 되고 있다. 박동화(60) 화수1리 이장은 "예전에는 요양병원으로 가는 어르신들을 자주 봤는데, 요즘은 그런 곳에 가는 사람이 없다"면서 "하루 한 번씩 마을회관에 오가면 운동도 되고 안정된 식사를 자주 챙기는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영덕군은 앞서 2015년 2개소를 먼저 시범 운영했다. 주민들의 호응과 사업 효과가 좋아 지난해엔 4개소, 올해는 9개소로 사업을 확대했다. 중앙정부나 경북도의 지원 없이 전액 군비 7380만원(1개소 820만원)으로 운영한다.

영덕군은 군내 전 경로당으로 이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재정 여건이 열악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 관내 237개 경로당으로 확대하려면 연간 19억4300여만원이 든다.

엄재희 영덕군 노인복지담당은 "한 끼 식사 대접이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사회 안전망, 마을 화목까지 챙기는 최고의 복지가 되고 있다"며 "가용할 재원이 확보되면 전체 노인정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덕=권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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